계엄 여파… 폭설 피해지 특별재난 선포 지연

경기도 등 피해액만 최대 ‘수천억’
광역시·도 중심 선포 촉구 했지만
탄핵 정국에 피해 수습 기약 못해
선포절차 간소화 개정심의도 스톱
행안부 “정부 지원 차질없이 진행”

“계엄령 사태 여파로 군의 대민 지원도 끊기고, 정부 지원도 마냥 미뤄질까 봐 한숨만 나옵니다.”

강원 횡성군에서 방울토마토 하우스 농사를 짓는 A씨는 최근 폭설로 큰 피해를 보았다. 6600㎡에 이르는 시설하우스에 눈이 쌓이면서 하우스 옆 주택까지 모두 붕괴된 것이다. A씨는 “무너진 하우스를 철거하는 등 피해를 복구해야 하는 데 일손을 구할 수가 없다”며 “외국인 계절 근로자는 모두 돌아갔고 시골이라 젊은 인부도 찾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임상섭 산림청장(왼쪽)이 5일 경기도 용인시 폭설 피해지를 방문, 응급복구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산림청 제공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의 여파로 폭설 피해를 본 전국 시·군에 대한 특별재난지역 선포가 지연되면서 피해 지역 주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통상 재난 발생부터 재난지역 선포까지 2주 정도 소요되는데 기준액을 넘어선 지역에 대해선 사전선포 형식으로 긴급지원이 진행돼 왔다. 이에 최근 국정 혼란이 없었다면 수백억원의 대설 피해를 본 지역은 지난주 재난지역 선포를 마쳤어야 했다는 탄식이 흘러나오고 있다.

 

9일 각 지방자치단체에 따르면 혼란은 곳곳에서 빚어지고 있다. 중부 지역 시·도를 중심으로 폭설 피해가 큰 시·군에 대해 재난지역 선포 요청이 이어졌지만 여야 정쟁이 극에 달하면서 후속책을 기약할 수 없는 분위기다.



지자체 피해액이 재난지역 선포 기준을 충족할 경우 중앙안전관리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치는데 위원회에는 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31개 부처장이 참여한다. 앞서 정부는 이런 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해 위원회 심의를 생략하는 내용의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개정안’을 지난달 말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하지만 비상계엄 사태로 법안 심의가 멈추면서 본회의 의결은 기대하기조차 어렵게 됐다.

시간이 지체되더라도 위원회 의결 이후 행정안전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재난지역 선포를 건의하면 대통령 재가를 거쳐 선포될 수 있다. 이 역시 이달 4일 국무위원 전원이 사의를 표명하고, 행안부 장관이 사임하면서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이번 폭설로 시설하우스, 축사 등의 피해는 역대 최대 규모였던 2018년 수준을 이미 뛰어넘었다. 전체 피해액의 80%가량은 경기도에 집중됐다. 경기도의 경우 이달 6일 용인·화성·광주·평택·이천·여주·안성 도내 7개 시·군 건의에 따라 행안부에 재난지역 선포를 요청했다. 이들 시·군 피해액은 3000억원을 훌쩍 넘긴 것으로 추산된다.

충북에서도 100억원 안팎의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진 음성·진천군이 선포 확정 지역으로 거론된다. 음성군의회의 경우 이달 6일 정례회에서 선포 촉구 건의안을 채택했다. 충남에선 천안·서천지역이 대상 지역으로 꼽힌다.

관련법에 따르면 시·군의 경우 피해액이 국고지원기준액의 2.5배가 넘으면 재난지역 선포 대상이다. 재난지역으로 지정되면 국고로 지방비 부담분의 50∼80%를 추가 지원받을 수 있고, 주민에게 전기·통신 등 공공요금 감면 혜택이 주어진다.

행안부는 이번 주말쯤 조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지자체 조사 내용을 현장에서 확인한 뒤 피해액과 복구소요액을 산출해 대상을 결정하는 식이다. 다만 행안부는 지자체별로 아직 피해를 확인하고 있거나 눈이 녹지 않은 지역에 대한 접근이 어려워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행안부 관계자는 “지자체 조사와 중앙합동조사를 병행해 대설 피해 규모를 조기에 확정하고, 재난지역 선포와 정부 지원을 차질 없이 진행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