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차 보증금 반환 약정 당시 방문 가능 항목을 합의서에 썼더라도 임차인의 동의 없이 방을 보여주면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10일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전주지방법원은 임차인이 임대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임대인은 임차인에게 위자료 3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임차인은 임대인 소유의 주택에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고 거주하고 있었다. 이들은 2022년 7월 임대차계약을 해지하기로 하면서 같은달 말까지 임대차 보증금을 모두 지급하면 주택을 인도하기로 했다. 다만 양측은 ‘7월 중 집을 보러 방문 가능’이라는 내용의 합의서를 작성했다.
이후 임차인은 집안의 물건 배치가 달라져 있는 점을 발견했다. 확인 결과 임차인의 동의 없이 임대인이 공인중개사에게 비밀번호를 알려줘 방을 보여줬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임차인은 임대인의 보증금 반환이 늦어지는 데다 사전 통보 없이 집을 보여주자 형사고소를 진행했다. 그 결과 임대인에게는 벌금 300만원의 약식명령이 내려졌다. 임차인은 이를 근거로 손해배상 청구를 하고자 법률구조공단을 찾았다. 공단은 임차인을 대리해 임대인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공단은 최근 혼자 사는 여성을 겨냥한 범죄가 증가하는 데다 누군지 모르는 사람의 재침입 가능성 등의 이유로 임차인이 고통을 호소해 임대인이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1심에서는 임차인이 다투지 않아 승소 판결이 선고됐으나 임대인은 소송대리인을 선임해 항소했다.
임대인은 항소심에서 반환 약정 당시 ‘집 보러 임차인 주거지 방문 가능’이라는 문구를 기재했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당시 임차인이 이사를 하면서 짐을 많이 빼둔 상태여서 임차인이 주거지에 거주하지 않고 있다고 믿을만한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임차인은 임대인에게 오기 전에 미리 연락을 달라고 한 사실이 있는 데다 합의서에 ‘방문가능’이라는 문구를 기재했다고 해 무조건 동의할 사유는 없다고 맞섰다. 결국 법원은 공단의 주장을 받아들여 “임대인은 임차인에게 위자료 3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임차인을 대리해 소송을 진행한 공단 소속 김건우 변호사는 “임대인이라 하더라도 임차인이 거주 중인 경우 주거공간에 마음대로 들어가면 주거침입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면서 “원활한 명도 절차를 위해 형식적으로 기재한 문구만으로는 주거지 출입에 대한 사전 양해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법원을 통해 확인한 사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