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가 현실이 됐다. 더불어민주당이 어제 국회 본의회에서 정부 안보다 4조1000억원 감액한 673조3000억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을 처리했다. 야당이 일방 감액한 예산안이 본회의 문턱을 넘은 건 사상 처음이다. 본회의 상정에 앞서 국민의힘이 민주당 안에서 3조4000억원 복원·증액을 요구하며 협상을 벌였지만 결렬됐다. 여당은 재난·재해 등에 쓰일 예비비와 경제 활성화 예산, ‘이재명표’ 예산인 지역 화폐 예산 3000억원 등의 복원·증액을 요구했다. 하지만 야당은 “감액 예산을 복원하려면 복원 규모 만큼 민생 예산도 증액돼야 한다”면서 여당에 책임을 떠넘겼다. 야당이 요구한 지역 화폐 1조원이 발목을 잡았다.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비상계엄 여파로 여야 원내 협상이 사실상 중단된 상황에서 헌법에 명시된 행정부의 예산 편성권을 무시한 것은 의회 권력을 쥔 거대 야당의 횡포다. 초유의 준예산 사태는 피했다지만, 정부의 주요 정책 집행에서 일정 부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당장 예비비가 반 토막 나고, 수사 기관의 특수활동비가 삭감되면서 민생과 치안, 재난·재해 대응, 사회복지 등의 정책 추진에 차질이 우려된다. 연구개발(R&D)예산의 삭감도 후유증이 클 사안이다. 주요 산업기술에서 중국이 턱밑까지 추격해 온 상황에서 더 늘려도 시원찮을 예산이 아닌가.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민생과 경제 회복을 위해 추후 추경 등의 방식으로 해결하면 된다”고 했다. 심도 있는 예산안 논의조차 내팽개친 야당이 할 말은 아니다.
경제 위기는 악화일로다. JP모건 등 해외 주요 투자은행(IB)이 속속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낮추고 있다. 이 마저도 비상계엄 사태 이후 불확실성이 반영되지 않은 수치라는 게 심각성을 더한다. 자칫 해외 투자자들에게 국내 경제 프로세스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까 걱정이 앞선다. 환율 상승에 따른 물가 압박과 주가 하락으로 인한 내수부진 및 산업 침체로 애꿎은 국민만 피해를 보고 있다.
대통령의 탄핵·하야 여부와 관계없이 국정은 톱니바퀴처럼 굴러가야 한다. 후폭풍을 줄이는 게 급선무다. 경제 살리기에 여야가 따로일 수 없다. 트럼프2기 출범과 대통령 유고 사태에 대비한 재정의 역할이 중요해진 만큼 야당이 제안한 ‘여·야·정 비상경제점검회의’라도 서둘러 가동해야 한다. 더는 정치 불안이 경제 불확실성을 키우는 일은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