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암초 스쿨버스에도 야유…낙인 찍힌 ‘충암 초·중·고’ [밀착취재]

충암고뿐만 아니라 충암초·중까지 불똥 번져
학생들 스트레스에 자율복 입도록 조처
“학교가 인성교육 안 했다”고 항의전화 빗발

노란색 충암초등학교 스쿨버스가 학생들을 내려주고 학교로 돌아왔다. 버스 뒤에는 경찰 순찰차가 있었다. 순찰차는 버스가 학교 정문을 통과하는 것을 확인한 뒤 지나갔다. 방과 후 수업이 끝나고 하교하는 초등학생 아들을 데리러 왔다는 40대 학부모 김모씨는 “실제 해코지를 당하는 일은 아직 다행히 없었지만 안심할 수 없다”며 “이번 일을 두고 사람들의 분노가 커지고 있는 상황은 이해하지만, 아무 연관이 없는데 학교에 손가락질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10일 서울 은평구 충암초 정문 앞에서 스쿨버스를 뒤따르던 경찰 순찰차가 지나가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계엄 연관자들로 지목받는 이들의 모교인 ‘충암고’를 비롯한 충암학원 소속 충암초, 충암중에까지 불똥이 튀는 형국이다. 일부 시민들이 충암초 스쿨버스에 야유를 보내거나, 충암고에 항의 전화를 거는 식이다. 이들 학교는 같은 부지에 모여 있다. 급기야 충암고 학생들이 학교와 재학생에 대한 비난을 멈춰달라며 직접 호소하고 나서는 일도 벌어졌다.

 

10일 서울 은평구 충암고에 태극기와 충암학원기, 충암고교기가 걸려 있는 모습이다.

10일 오후 서울 은평구 충암초·중·고 주변에서 만난 학생과 학부모들은 혹시 모를 일에 불안한 마음이라고 전했다. 50대 학부모 최모씨는 “언론에서 ‘충암파’라는 표현을 쓰면서 이목이 더 집중되는 것 같다”며 “스쿨버스 운행이 방해받았다는 보도를 봤는데, 사람들 관심을 받으려는 유튜버 등이 학교로 찾아와 소란을 피우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충암고는 이번 사태에 대한 비난이 엉뚱하게 학교로 향하자 등하교 시간 순찰을 강화해 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경찰에 보낸 것으로 파악됐다. 충암고는 윤 대통령(8회 졸업생)과 김 전 장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여인형 방첩사령관 등 비상계엄 사태 주동자로 거론되는 이들의 모교다. 학생과 교직원의 안전을 우려해 경찰에 순찰 강화를 요청한 것이다.

 

10일 서울 은평구 충암초·중·고 주변 담벼락에 이번 사태와 관련한 여야 정당의 펼침막이 걸려 있다.

이날 오후 찾은 충암고 주변에선 평소와 다른 모습이 보이진 않았다. 운동장에서는 야구부 소속 학생들이 추운 날씨에도 훈련하고 있었다. 충암고는 ‘야구 명문 학교’로 알려져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이던 2021년 9월 충암고를 방문해 야구부 선수들과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학생들 사이에선 교복과 체육복을 입고 다니는 게 눈치 보인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충암고 학생 이모(16)군은 “학교에서 사복을 입고 와도 된다고 해서 다행”이라면서도 “안 그래도 예민한 기말고사 기간에 이런 일들이 벌어져 스트레스라는 이야기가 많다”고 했다. 충암중 학생 박모(15)군은 “평소 학원 갈 때 학교 체육복을 입고 갔는데 괜히 길에서 마주치는 어른들 눈치가 보인다”고 말했다.

 

10일 서울 은평구 충암고 모습이다. 기말고사로 학생들이 일찍 귀가해 학교는 조용했다.

학교 측은 6일 학생들이 내년 2월까지 교복 대신 자율복을 입을 수 있게 임시 조처를 내렸다. 충암고 관계자는 “주말 사이에도 100통이 넘는 부재중 전화가 왔다”며 “막무가내로 전화해 ‘인성 교육을 제대로 안 해서 이런 사람을 배출했다’며 쌍욕까지 한다”고 전했다.

 

충암고 학생회는 10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식 입장문을 내고 “12·3 사태로 인한 시민의 분노는 충암고 학생회 또한 백번 공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대통령 및 논란의 인물들은 충암고를 졸업한 지 40년이나 지난 졸업생”이라며 “부디 충암고와 재학생을 향한 비난을 멈춰주시고 학생들이 안전하게 자신들의 미래를 꿈꾸고 펼쳐나가도록 도와주기를 간곡히 부탁드리겠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