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프리즘] 왓슨과 홈스

반도체엔 꼼꼼·충실한 인물이
SW분야에는 슈퍼스타형 필요
기술경쟁 치열해지는 현대사회
끊임없는 인재 발굴·제도 모색을

코넌 도일의 베스트셀러 소설 셜록 홈스 시리즈에는 왓슨과 홈스 두 인물이 등장한다. 조수인 왓슨은 의사로 진중하고 차분하다. 주인공인 셜록 홈스는 천재적이지만 직관에 의존하는 충동적인 인물이다. 셜록 홈스라는 소설의 큰 매력 중 하나는, 이렇게 다른 두 사람이 완벽한 한 팀을 이룬다는 데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IT산업의 두 기둥인 반도체와 소프트웨어가 이와 비슷한 한 팀이라는 것이다.

반도체 산업은 대규모 협업에 적합한 인재를 원한다. 반도체 공장 안에 들어간 원자재는 몇 개월이 지나야 완제품이 된다. 반도체 칩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수백~수천번의 공정 적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만약 제조에 필요한 공정이 1천회라고 하면, 각 공정에서 수율이 0.1%씩만 감소해도 최종 제품 수율이 37%로 폭락하게 된다. 게다가 제품이 출시되어 사람들 손에 들어가고 나면 결함을 해결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반도체 회사에는 조직에 충실하고 꼼꼼한, 왓슨 같은 사람이 선호된다.

정인성 작가

소프트웨어는 다르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도 다양한 직원들과 협업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한 사람이 만들어낸 창의적인 코드가 전체 소프트웨어 질, 나아가서 고객들의 경험 자체를 삽시간에 바꾸는 경우도 있다. 전 세계 1위 검색엔진인 구글 역시 초기에는 창업자 고작 두 사람이 직접 만들었다. 그렇다 보니 소프트웨어 업계에서는 슈퍼스타형 인재가 전권을 마구 휘둘러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일이 흔히 일어난다. 선두 반도체 회사들은 지난 30년간 그대로였지만, 선두 소프트웨어 회사는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페이스북, 넷플릭스 등 수년마다 새로 나타났다. 그야말로 홈스의 무대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최근 반도체 기업들이 겪는 인력 문제를 이해할 수 있다. 21세기가 되면서 IT기업들이 크게 성공하고 창업자들이 스타로 떠오르자, 젊은층 역시 홈스에 가까운 모습을 추구하게 되었다. 하지만 반도체 산업은 왓슨 같은 인재를 필요로 한다. 이 불일치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가장 중요한 것은 왓슨의 매력을 알려주는 것이다. 사실 왓슨은 단순한 조수가 아니다. 바위 같은 안정 성격을 바탕으로 셜록 홈스의 충동적 성향의 단점을 메꿔주는, 소설의 두 기둥 중 하나이다. IT 세상에서 반도체 회사의 역할도 마찬가지이다. 변화무쌍하고 충동적 소프트웨어를 든든히 받쳐주는 IT 기술 발전의 두 기둥 중 하나이다.

물론 많은 사람 눈에 소프트웨어라는 슈퍼스타가 눈에 아른거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열 중 아홉은 우리 모르게 사라진다. 어쩌면 반도체야말로 안정적이고 오랫동안 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진짜 주인공일지도 모른다. 이 부분을 알려주어야 한다. 왓슨은 수사의 중심은 아니었지만, 홈스와 일하는 것을 너무나 즐겨 본업인 의사 일을 미루고 홈스를 따라나서는 경우도 많았다. 왓슨의 일도 충분히 즐거운 일임을 이해시켜야 한다. 내가 왓슨처럼 묵묵히 해낸 작은 개선이 전 세계 완제품에 퍼져 나가고 모든 소프트웨어를 지탱하게 된다. 자부심을 가져 볼 만하지 않은가.

한편, 이제 반도체 회사들도 홈스와 같은 사람들을 끌어들여야 한다. 반도체 미세화가 어려워지면서 연구개발 현장에는 더 많은 창의력이 요구되고 있다. 또한 미세화로 얻어낼 추가 성능이 줄어들게 되자 반도체를 특정 고객을 염두에 두고 만드는 일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홈스와 비슷한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연구개발의 큰 장애물을 치우는 한편 소프트웨어 분야의 트렌드를 빠르게 식별해 연구개발 현장에 전달해야 한다.

소설 셜록 홈스는 두 등장 인물이 자신의 역할을 함으로써 비로소 완성되는 소설이다. 홈스 없는 왓슨은 그냥 동네 의사이고, 왓슨 없는 홈스는 자기 집에서 권총을 사격하거나 접객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괴팍한 이웃일 뿐이다. 기술경쟁이 치열해지는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반도체 산업, 나아가 IT 산업을 앞서가기 위해서는 우리만의 왓슨, 홈스 팀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끊임없는 인재 발굴과 그들에게 맞는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 가야 한다.

 

정인성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