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로 탄핵 정국이 이어지는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이 민생행보로 방문한 시장과 식당 등에서 상인들이 대통령 친필 사인과 사진을 떼는 등 전국적으로 윤 대통령 흔적 지우기에 나서며 계엄 반발 분위기가 계속 고조되고 있다.
11일 민주노총 등에 따르면 경남 창원시 한국산업단지공단 경남본부 앞마당에 있는 윤 대통령 휘호가 담긴 표지석에는 대통령 이름 앞에 ‘내란’이라는 문구가 적혔다.
비상계엄 사태로 촉발된 탄핵 정국에 분노한 민주노총 경남본부가 현장을 찾아 검은색 스프레이를 뿌린 것으로 나타났다.
민노총 경남본부 관계자는 “국민 다수가 윤 대통령이 내란을 일으킨 주범으로 보는 상황인데 불법 계엄에 대한 분노 표출”이라고 말했다.
‘보수의 심장’으로 불리는 대구에서도 윤 대통령에 대한 흔적 지우기가 확산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2022년 당선인 신분으로 방문해 입소문을 탄 대구 중구 서문시장 칼국수 가게에선 더 이상 대통령의 사진과 친필 사인을 찾아볼 수 없다.
이곳을 운영하는 업주 박모씨는 “밥 먹다 손님들이 욕하는 게 싫어서 현수막을 뜯었다”고 했다.
인근 윤 대통령이 이불을 구입했던 침구 가게 직원도 “윤 대통령이 방문했다는 이유로 서문시장에 불났을 때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는 현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대구서문시장연합회 관계자는 “서문시장 상인들이 윤 대통령을 응원해 주고픈 마음이 있어도 이미지가 안 좋아지다 보니 가슴 아프게 뗐다고 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2022년 3월8일 20대 대선을 하루 앞두고 대구 민심의 ‘바로미터’로 통하는 서문시장을 찾아 “이곳에 오니 힘이 난다. 제 정치적 에너지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다녀갔던 인근 북구 칠성시장 곰탕집에서는 아직 사진과 사인이 걸려 있었지만, 업주는 비판 여론을 의식한 듯 취재진의 질문에는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곰탕집 사장은 “일반 사람도 와서 밥 먹고 가는 것처럼 대통령도 똑같다. 수많은 손님 중 한 명일 뿐”이라며 말을 아꼈다.
같은 날 대구 중구의 한 국밥집도 식당 내 내걸려 있던 윤 대통령의 사진과 친필 사인 등이 사라졌다.
이곳은 2022년 5월 대구세계가스총회 개회식 참석을 위해 대구를 방문한 윤 대통령이 권영진 전 대구시장 등과 함께 식사를 했던 곳이다.
업주 김모씨는 “당선인 신분으로 식당을 찾아준 것이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사진을 내걸었는데 정치적으로 성향이 다른 사람들이 시비를 걸어 최근 내렸다”고 말했다.
충북 청주시 육거리시장에도 최근 윤 대통령 사진 등이 없어졌다.
이곳에는 상점 곳곳에 최근까지 윤 대통령이 다녀간 사진 등이 붙어있었다.
윤 대통령이 다녀갔던 한 음식점 상인은 출입문에 붙었던 윤 대통령 사진은 비상계엄 직후 떼어냈다.
윤 대통령 당선인 시절인 2022년 4월 이 음식점에서 국회의원 등과 식사한 사진이었다.
이 상인은 음식점에 있던 정치인들 사인과 함께 걸어 놓았던 윤 대통령의 친필 사인도 치웠다.
한 상인은 “비상계엄 선포 얘기를 듣고 사진을 떼어냈다”며 “손님들에게 가게를 홍보하기 위해 걸어 놨었는데 잘 뗐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2월에도 이곳을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이런 헌법 정신이 바로 민생현장인 전통시장에 오면 책에서가 아니라 가슴으로 벅차게 느껴진다. 국민께서 더 잘 사실 수 있도록 세심하게 챙기고 또 국민의 이런 애로사항을 더 세심하게 이렇게 경청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충남 부여군 박정현 군수는 이날 집무실에서 윤석열정부의 국정 목표를 떼어냈다.
박 군수는 출근에 앞서 군청 옆 원형교차로에서 윤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1인 피켓 시위를 한 뒤 출근 후 집무실에서 윤 대통령 국정목표를 떼어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박 군수는 “윤석열정부의 국정 기조는 공정하고 반듯한 나라였는데, 반듯하기는커녕 위헌·불법 친위쿠데타로 나라를 초유의 내란 사태로 몰아넣었다”며 “윤 정부의 국정철학이 담긴 국정 목표를 (집무실) 떼는 것이 민주주의의 상식”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윤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구광모 LG 회장 등이 함께 찾아 떡볶이와 빈대떡 등을 먹어 입소문을 탄 부산 중구 깡통시장 분식점도 상황은 비슷하다.
현재 이 분식점 벽에 걸려 있던 당시 사진은 윤 대통령 모습만 종이로 가려졌다.
김건희 여사 모교인 서울 강동구 명일여고에는 대통령 부부를 규탄하는 대자보가 붙기도 했다.
‘부끄럽지 않은 학교를 소망한다’라는 제목의 대자보에서 “김건희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안녕하지 못하다”며 “부디 민주적·양심적으로 행동해 우리 후배들이 부끄럽지 않은 학교를 졸업하게 해달라”고 주장했다.
반면 일부 보수단체는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 윤 대통령을 지지하는 화환을 보내고 있다.
대통령실 차량 출구 앞 담장 외벽에 줄지어 세워진 수십개 화환에는 ‘윤 대통령을 지키는 게 나라를 지키는 것’, ‘윤석열 대통령님 힘내세요.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등의 문구가 적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