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한국의 인공지능(AI) 기술과 산업 수준을 글로벌 ‘2군’ 수준으로 평가했다. 기술력과 잠재력 측면에서 주류 AI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1군 국가들과 경쟁하기보단 틈새시장을 노려야 한다는 게 이들의 조언이다. 미국·중국에 이은 세계 3위권으로 진단하고 ‘AI G3’(글로벌 3강)을 목표로 했던 정부의 인식과는 괴리가 있어 정책 방향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에 따르면, BCG는 최근 73개국을 대상으로 평가한 ‘AI 성숙도 매트릭스’ 보고서에서 미국·중국·영국·싱가포르·캐나다 등 5개국을 ‘AI 선도국가’로 분류했다.
AI 도입 현황을 평가하고 해당국의 AI 기술에 기반한 경제 발전 잠재력을 심층분석한 이 보고서는 미국과 싱가포르는 혁신을 주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강력한 AI 인재 풀을 갖춘 것으로 평가했고, 중국은 AI 관련 특허에서 선두를 달린다고 설명했다. 특히 미국은 소프트웨어, 플랫폼, AI 컴퓨팅을 위한 필수 하드웨어, 클라우드 기반 AI 서비스를, 중국은 AI 기반 자율 주행차와 소비 가전을 만드는데, 이들 국가는 향후 국제 기술 공급망에서 표준을 설정하고 전체 AI 환경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측됐다. 그러면서 보고서는 전 세계 AI 관련 지출 규모가 2028년까지 약 6320억달러(약 840조원)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그간의 우리 정부 설명과 차이가 있다. 지금까지 정부는 AI 관련 정책을 발표하면서 영국 토터스미디어가 분석한 ‘글로벌 AI 순위’를 주로 인용, 우리나라를 세계 3위권으로 간주해 왔다.
보고서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AI 경쟁국의 전략으로 틈새시장이나 전문화된 시장에서 지분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류 AI 시장보단 바이오와 통신, 학문 등 특정 전문영역에 기술 개발을 집중하란 의미다.
연말 처리가 예상됐던 AI기본법(AI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논의 테이블에 오르지 못한 점도 한국 AI 경쟁력 저하와 관련해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국내 AI 기업들이 미리 글로벌 규제에 대비토록 하는 국내 첫 AI 규범이었던 AI기본법은 여야 간 이견이 없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를 지난달 통과했다. 이어 법사위를 거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연내 제정될 계획이었지만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여부가 국회의 핵심 쟁점이 되면서 존재감이 사라졌다. 12월 임시국회에서 논의할 수도 있지만 이마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AI 윤리 규범인 AI 기본법이 처리되지 않을 경우 글로벌 시장 진출을 노리는 AI 개발 기업들의 글로벌 규제 대비가 불가능하다. 전창배 국제인공지능윤리협회 이사장은 “국내 기업들이 미국 빅테크 AI와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하기 위해선 AI 기본법을 비롯해 글로벌 수준에 부합하는 규범 정립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이날 한 포럼 기조강연 직후 기자들과 만나 “(AI 기본법은) 나라를 위해 빨리 통과돼야 한다”며 “다 됐으니까 국회 법사위만 가면 금방 될 것 같은데 국민 응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