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 사태’에 연루된 군 핵심 인물들이 대거 포함된 장성 진급 행사에서 이례적으로 긴 격려 연설을 통해 ‘국가관’, ‘대적관’을 언급하며 장병 정신교육을 강조한 것으로 확인됐다. 내란죄 혐의로 구속된 윤 대통령의 충암고 1년 선배 김용현(충암고 7회·육사 38기) 전 국방부 장관은 윤 대통령 행사를 최소 300회 이상 수행한 것으로 파악됐고, 계엄사령관을 맡았던 박안수(육사 46기) 육군참모총장도 10차례 이상 대통령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드러났다.
11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윤 대통령은 지난해 11월6일 ‘장성 진급·보직 신고 및 삼정검 수치(끈으로 된 깃발) 수여식’ 행사에서 진급 장군들을 대상으로 7분간 연설했다. 윤 대통령은 취임 후 10번의 ‘장성 진급·보직’ 행사를 주재했지만 이날을 제외하면 대체로 대통령 발언은 생략하고 비공개로 담소하거나 한 차례 1분간 간략히 격려하는 데 그쳤다.
당시 윤 대통령은 공교롭게도 이번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수사 선상에 오른 곽종근(육사 47기)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 이진우(육사 48기) 전 수도방위사령관, 여인형(충암고 17회·육사 48기) 전 국군방첩사령관 등을 각각 소장에서 중장으로 승진시키고 해당 보직에 임명했다. 이들 외에도 육해공군 장성 총 9명이 진급했다. 행사에는 경호처장이던 김 전 국방장관도 배석했다.
윤 대통령은 당일 오후 5시쯤 서울 용산 대통령실 자유홀에서 열린 행사에서 “우리나라의 안보 상황이 매우 엄중하다”며 “지휘관은 부하 장병을 사랑해야 그들이 지휘관의 명을 위기 시에 따를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국가의 안보는 값비싼 무기와 첨단 전력을 갖춰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장병들의 교육 훈련과 대적관 그리고 정신 자세”라며 진급자들을 향해 “여러분이 지휘관으로 나가면 우리 장병들이 이런 첨단 전력을 제대로 다룰 수 있는 교육과 훈련을 잘 시켜주고 아울러 확고한 국가관과 대적관, 안보 태세를 가질 수 있도록 정신교육에도 만전을 기해달라”고 당부했다.
또 윤 대통령은 격려사에서 북한 핵 위협을 언급하며 “북한은 선제 핵 공격을 자신들의 헌법에 법제화하고 있다”며 “대남 적화통일을 위해 선제적으로 핵을 사용할 수 있다”고도 했다. 삼정검 수치는 처음 장군이 될 때 받은 삼정검에 직책을 명시한 수치를 국군통수권자가 직접 달아주는 진급 행사다.
기자들이 동행 취재한 윤 대통령의 공개행사 1114건을 전수 분석한 결과, 김 전 장관은 경호처장 재직 당시를 포함해 윤 대통령 행사에만 최소 387회 이상 참석했다. 이는 대통령실 이도운(393회) 홍보수석보다 조금 적고 이기정(293회) 의전비서관보다 많은 수준이다. 지난해 10월 말 취임한 박 참모총장은 지난달 국가조찬기도회, 10월 국군의날 행사, 지난해 12월 방산수출 전략회의 등 진급 전후를 포함해 최소 10차례 이상 대통령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파악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지난 8월 여름휴가를 윤 대통령이 군과의 스킨십을 늘리는 ‘안보 휴가’로 활용한 점도 재조명받고 있다. 4박5일간의 휴가 중 2박4일을 군부대 관련 일정으로 채우고 군 수뇌부 및 장병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때 대부분의 일정은 김 전 국방장관이 수행했고, 박 참모총장 등 이번 사태 관련 인물들도 일부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8월5일부터 9일까지 여름휴가를 보낸 윤 대통령은 경남 진해 해군기지와 충남 계룡대 3군 본부 등을 잇달아 방문해 머물며 군 관계자들과 시간을 보냈다. 특히 일부 일정은 김건희 여사와 별도로 윤 대통령만 움직이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6일부터 7일까지 진해 해군기지에서 해군 및 해병대 장병들을 주로 만났다. 이어 8일과 9일에는 계룡대를 임기 중 세 번째로 찾아 전시지휘시설(U-3)을 방문하고 박 참모총장 등 3군 참모총장들과 함께 구역을 돌아보며 소통했다. 대통령실에서 당시 배포한 사진에는 박 참모총장이 윤 대통령의 바로 뒤에서 걷거나 환하게 웃으며 박수 치는 모습 등이 담겼다. 당시 대통령 경호처장이던 김 전 국방장관도 사진에 등장한다.
윤 대통령은 계룡대 방문 일정 중이던 8월8일 군 체력단련장인 구룡대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기도 했다. 당시 경호처장이던 김 전 국방장관은 지난달 28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윤 대통령이) 8월8일과 9일 계룡 구룡대에서 운동한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장병들 중 가장 고생하는 부사관들과 중령 영관급 실무자들하고 라운드를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야당에 따르면 이후에도 윤 대통령은 7차례가량 군 골프장을 찾은 만큼 함께 골프를 친 대상과 이번 사태 관련 여부도 조사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구룡대 골프장에서 골프를 친 이날 저녁에는 특전사 간부 등과 다과 및 저녁식사를 함께했다. 곽 전 특전사령관의 참석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군 소식통은 “김 전 장관이 대통령과 군 관계자들이 만나는 자리를 만들어 자신의 권위를 높이려고 했을 수 있다”며 “계급 사회인 군에서 대통령이 갖는 상징성은 인사 대상인 장성들에게는 절대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