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어두운 밤에도 언어는 우리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묻고, 언어는 이 행성에 사는 사람의 관점에서 상상하기를 고집하며, 언어는 우리를 서로 연결합니다. 문학작품을 읽고 쓰는 일은 필연적으로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하는 일입니다.”
소설가 한강이 10일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작가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 증서와 알프레드 노벨(1833∼1896)이 새겨진 메달을 받았다. 한강은 시상식 직후 열린 연회에서 인상적인 수상소감을 밝혔다.
한강은 이날 오후(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의 랜드마크인 콘서트홀(Konserthuset)에서 열린 2024년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 칼 구스타브 16세 스웨덴 국왕으로부터 노벨상 메달과 증서(diploma)를 받았다.
그는 부문별 시상 순서에 따라 물리학상, 화학상, 생리의학상 수상자들에 이어 네 번째로 호명됐다. 한림원 종신위원인 스웨덴 소설가 엘렌 맛손은 5분가량의 연설에서 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소개하고 평가한 뒤 “친애하는(Dear) 한강”이라고 그를 무대의 중앙으로 불렀다. “국왕 폐하로부터 상을 받기 위해 나와 주시기를 바랍니다.”
한강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무대 가운데로 향하자 1500여명의 행사 참석자들이 모두 기립했고, 그가 구스타브 16세로부터 노벨상 메달과 증서를 받아 들고 환한 미소를 띠며 국왕과 악수했다. 이때 객석에 있던 많은 사람이 일어나 우레와 같은 박수를 치며 축하와 경의를 표했다.
그가 이날 받은 메달은 앞면에 노벨의 얼굴이, 뒷면에는 한강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메달은 상자에 담긴 채 전달됐다. 문학상 수상자의 증서는 다른 수상자들의 것과 달리 양피지로 제작돼 특별함을 더했다.
약 1시간10분 동안 진행된 시상식은 노벨재단 공식 유튜브 채널로 생중계됐다.
시상식을 마친 그는 오후 7시 국왕과 총리, 스웨덴 한림원 등 수상자 선정 기관 관계자 등 1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스톡홀름 시청사 블루홀에서 열린 연회에도 참석했다. 스웨덴 국왕의 사위인 크리스토퍼 오닐과 함께 연회장에 입장했고, 국왕과 대각선으로 마주 보는 자리에서 연회를 즐겼다.
한강은 만찬이 끝날 때쯤 스웨덴 대학생 사회자의 한국어 소개를 통해서 네 번째 순서로 수상소감도 밝혔다. 그는 특유의 잔잔한 어조로 “문학작품을 읽고 쓰는 일은 필연적으로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하는 일”이라고 영어로 4분가량의 수상소감을 밝혔다. 시끌벅적했던 현장은 한순간 고요해졌다.
한강은 어린 시절 산수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던 도중 비를 피하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한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이를 글 쓰는 일에 비유하며 운을 뗐다. 그는 “길 건너편에는 비슷한 건물의 처마 아래에 비를 피하는 사람들이 보여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었다”며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그 비에 팔과 다리가 젖는 것을 느끼면서 그 순간 저는 갑자기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와 나란히 비를 피하는 사람들과 길 건너편에서 비를 피하는 모든 사람이 저마다 ‘나’로서 살고 있었다”며 “이는 경이로운 순간이었고, 수많은 1인칭 시점을 경험했다”고 설명했다. 또 “책을 읽고 글을 쓴 시간을 돌아보면 저는 이런 경이로운 순간을 되새기고 또 되새겼다”며 “언어의 실타래를 따라 마음의 깊은 곳에 들어가면 다른 내면과 마주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가 태어난 이유, 고난과 사랑이 존재하는 이유 등은 수천 년 동안 문학에서 제기돼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며 “우리가 이 세상에 잠시 머무르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가 인간으로 남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가장 어두운 밤에는 우리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묻는 언어가 있다. 문학상이라는 상의 의미를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다”며 감사하다는 말로 소감으로 마무리했다.
연회가 끝난 뒤 올해 노벨화학상 공동 수상자 존 점퍼는 “그녀(한강)의 수상소감이 정말 감명 깊었다”고 한국 언론에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