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김수미 “하루하루가 고문”…40년간 써내려온 일기, 세상 밖으로

고인, 세상 떠나기 전까지 가장 솔직한

심정 털어놨던 곳은 바로 이 작은 수첩

“중1 때부터 고3까지 늘 배가 고팠다”

지난 10월 25일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고 김수미(본명 김영옥·1949∼2024)의 일기에는 화려한 배우의 모습 이면에 감춰진 고통, 일에 대한 열정과 불안, 가족을 향한 사랑과 고민이 가득 담겨 있다.

 

 

고인이 생전에 가장 솔직한 심정을 드러냈던 곳은 작은 일기 수첩이었다. 때로는 감사의 기도가 빼곡히 채워졌고, 때로는 흐트러진 글씨로 절절한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김수미가 1983년 30대부터 말년까지 기록한 일기는 그의 삶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은 책으로 엮였다. 유작인 ‘나는 탄원한다 나를 죽이는 모든 것들에 대하여’는 12일 출간된다.

 

유가족은 고인의 말년에 겪었던 고통을 지켜보며 안타까운 마음에 일기를 공개했다고 전했다. 책의 인세는 전액 기부될 예정이다. 고인의 글에서도 일기를 책으로 펴내려는 의지와 이유를 엿볼 수 있다. “이 책이 출간된 후 가족에게 닥칠 파장이 두렵다”면서도 “자살을 결심한 사람들, 그리고 청소년들에게 제 삶의 철학을 전하고 싶다”고 썼다.

 

고 김수미의 일기 속 내용. 유가족 제공

출간 전 입수된 책에 따르면, 김수미는 별세 직전 자신이 이름을 내건 식품 판매 회사와의 분쟁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었다. 2023년 10월부터 11월까지의 일기에서는 “하루하루가 고문이다”, “기사가 터질까 봐 잠도 밥맛도 잃었다”는 고백이 담겼다. 해당 시기에는 아들 정명호 씨가 ‘나팔꽃 F&B’의 대표 A씨를 횡령 및 사기 혐의로 고소하고, 상대가 맞불 기사를 예고했던 상황이었다.

 

올해 1월에는 나팔꽃 F&B가 정 씨를 해임하고 김수미와 함께 업무상 횡령 혐의로 고소하며 관련 기사가 쏟아졌다. 고인은 일기에 “주님, 저는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횡령이라니 정말 어이가 없다”고 적으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책 '나는 탄원한다 나를 죽이는 모든 것들에 대하여'. 출판사 용감한까치 제공

고인의 딸 정모 씨는 “엄마는 기사 한 줄이 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고 수치스럽게 여겼다”며, 겉보기와 달리 고인이 기사와 댓글에 크게 상처받았다고 전했다.

 

말년의 김수미는 공황장애로 고통받았다. 올해 1월 일기에는 “밥이 모래알 같다. 숨 막히는 고통은 어떤 약으로도 치유할 수 없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또 다른 날에는 “불안과 공포로 생애 최고의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적었다.

 

가족들은 고인이 마지막으로 모습을 비춘 홈쇼핑 방송에 대해 모두 만류했지만, 회사의 압박으로 출연했다고 회상했다. 딸 정씨는 “스트레스와 공황장애로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던 상태에서 방송에 나가신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일기장에는 삶의 고통만 담겨 있지 않았다. 연기에 대한 열정은 김수미의 삶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였다. 그는 1971년 MBC 공채 3기 탤런트로 데뷔해 50년 넘게 쉼 없이 활동하며 “목숨을 걸고 녹화하고, 연습했다”고 기록했다. 2004년 일기에는 “70년 만에 다시 데뷔하는 마음으로 전력 질주하겠다”는 다짐도 남겼다.

 

김수미는 연기뿐 아니라 요리와 음식 인심으로도 유명했다. 그는 중학교 시절 늘 배고팠던 기억을 떠올리며 “나와 밥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라고 썼다. ‘전원일기’ 녹화 당시 소품으로 차려진 밥을 실제로 먹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가족을 향한 애정 또한 일기 곳곳에 드러난다. 1985년에는 “천사처럼 자는 딸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매일 맹세했다. ‘너희를 위해 이 엄마 열심히 살게’라고”라는 글을 남겼다.

 

김수미는 화려한 인기보다 조용하고 평범한 삶을 동경했다. 1986년 일기에서는 “적당히 일하고 아늑한 집에서 자잘한 꽃을 심으며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길 기다리고 싶다”고 적었다. 2011년에도 “마당이 있는 집에서 나팔꽃 넝쿨을 올리고 글을 쓰며 살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고인의 명복을 비는 49재는 이날 오후 2시 경기 용인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