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노벨상 ‘내 좌표’ 파악 계기, 계속 글 쓰겠다...나에게 글쓰기야말로 희망의 증거”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문을 쓰면서 제 과거를 많이 돌아보게 됐습니다. 어디서 출발해 여기까지 왔고, 지금 어디에 있는지 나의 ‘좌표’를 파악하게 됐어요. 여태까지도 늘 써왔는데, 앞으로 글을 쓰는 게 어려워질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계속 쓰던 대로 쓰려고 합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이 11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스웨덴어판 출판사인 ‘나투르 오크 쿨투르’에서 열린 한국 기자단과의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스톡홀름(스웨덴)=뉴스1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는 11일(현지시간) 노벨문학상 수상이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며 앞으로도 계속 글을 써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한 작가는 이날 스웨덴 스톡홀름의 한 출판사에서 열린 한국 언론 대상 기자간담회에서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눈) 3부작이 있는데, 그 마지막으로 쓰기 시작했던 글이 결도 달라지고 분량도 길어져 장편 ‘작별하지 않는다’가 됐다”며 “그래서 3부작을 마무리하는 소설을 이번 겨울까지 쓰려했는데, (노벨상 수상으로) 준비할 일이 많아 늦춰졌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시사했다. 이와 관련, 그는 지난 7일 수상 강연에서 일찍 세상을 떠난 자신의 언니를 다룬 소설을 집필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자신의 어떤 작품을 먼저 읽으면 좋을지 묻는 질문에 “한국 독자에게는 처음이 ‘소년이 온다’이면 좋을 것 같고, 이 책과 연결된 ‘작별하지 않는다’를 이어서 읽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너무 진한 책보다 조금 성근 책을 원한다면 ‘흰’이나 ‘희랍어 시간’을 읽는 게 좋을 것 같다”며 “‘채식주의자’는 처음부터 읽기보다 다른 책을 읽은 뒤에 보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특히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손에 목숨을 잃은 중학생 동호를 비롯한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장편 ‘소년이 온다’가 오월 광주를 이해하는 ‘진입로’가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 소설(‘소년이 온다’)은 실제 일어난 사건을 다루는 만큼 더 조심스러웠다”며 “이 책이 광주를 이해하는 데 어떤 진입로 같은 것이 돼 주지 않을까하는 바람이 있었다”고 말했다.

 

한 작가는 전날 노벨상 시상식 연회에서 자신의 작품을 전 세계 독자들에게 전해준 번역가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려 했지만 하지 못했다며 번역가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분들도 계시지만, 모르는 분들이 훨씬 더 많은 상황”이라며 “그러나 (번역가들과 저는) 함께 있는 것이고, 문장마다 함께 있고, 모든 문장 속에 함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이른바 각종 기념사업이 추진되는 데 대한 비판적인 견해도 밝혔다. 그는 “저는 책 속에 모든 게 다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며 “어떤 일(사업)을 하고 싶다면 책 속에서 뭔가를 찾는 게 더 좋다는 생각이 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만약 어떤 의미를, 공간에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닿기를 원한다면 그건 굉장히 가시적인 방법”이라며 “정말 중요한 건 책 속에 열심히 써놨으니, 그걸 읽는 게 가장 본질적인 것 같다. 그 외에 바라는 점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선 비상계엄 사태로 혼란스러운 국내 정치 상황에 대해선 “제가 5일 한국에서 출국하기 전까지 뉴스로 상황을 접했는데, 여기 도착한 뒤로 일이 너무 많아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다”며 “어떤 말을 할 만큼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이 11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스웨덴어판 출판사 ‘나투르 오크 쿨투르’에서 열린 한국 기자단과의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스톡홀름(스웨덴)=뉴스1

한강은 이날 스웨덴 스톡홀름 링케뷔에 있는 도서관에서 10∼15세의 다문화 학생 100여명과 만나 문학을 주제로 교감하는 특별한 시간을 갖기도 했다. ‘노벨문학상 기념책자 낭독회’라고 불리는 이 행사는 다문화 가정이 많은 스톡홀름 링케뷔와 텐스타 등 2개 지역 학생을 대상으로 여는 36년 전통의 행사. 학생들은 지난 10월 한강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된 직후부터 ‘흰’,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등 한강의 소설 4권의 발췌본 혹은 전체를 읽고 토론을 하는 등 두 달간 한강 문학을 공부했다. 사용되는 모국어가 마흔 가지에 달할 만큼 다양한 배경의 이 학교 학생들은 각기 한강의 작품을 읽고 느낀 점을 표현한 시·그림·노래 등을 한강과 나눴다.

 

한강은 이날 학생들에게 “나의 작품을 많이 읽고 대화를 나누고, 경험을 끌어내 나눠줘 정말 감동했다”며 “오늘 이 자리는 앞으로 살면서 절대 잊지 못할 특별한 기억이 될 것”이라고 감사를 전했다. 도서관 방명록에는 “이들을 이끌어준 도서관의 사서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고 적었다.

 

한강은 12일 현지 왕립극장에서 열리는 대담 행사를 끝으로 일주일간의 노벨 시즌을 마치고 다시 글을 쓰는 일상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글쓰기야말로 그에겐 희망일 것이다. “말을 건네고 글을 쓰고 읽고, 귀를 기울여서 듣는 과정 자체가 결국은 우리가 가진 희망을 증거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저는 일상으로 돌아가서 조용히 열심히 신작을 쓸 테니까 지켜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