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뒤흔든 비상계엄 사태 큰 충격에 연말 감흥 사라져 정치의 본질·한계 다시 생각 불안정한 시간들 지나가길
12월이다. 아니, 어느새 한 해 마지막 달의 3분의 1이 지나갔다. 12월에 들어서자마자 터진 계엄령 사태는 온 나라를 폭풍처럼 휘감았다. 12월이 주는 후회나 매듭, 이런 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온 국민은 충격에 휩싸였다. 그리고 여의도로 몰려들었다. 캐럴 대신 K팝이, 크리스마스트리의 반짝 전구 대신 형형색색의 응원봉이 광장을 메웠다.
마침내 12월에 할 일을 다 잊게 되었다. 한 해 동안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일이나 오래 잊었던 안부를 챙기는 일, 또는 내년에 대한 계획을 구체화하는 일, 이런 것들은 뒷전으로 미루고 종일 실시간 뉴스에 귀 기울인다. 그런 가운데 7일(현지시간)에는 스웨덴 한림원에서 노벨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의 강연이 있었다. 여덟 살 때 쓴 시로 시작한 강의였다. 사랑은 어디 있으며, 사랑이 무엇인지 질문하는 어린 한강의 시를 통해, 각별한 사랑을 확인하던 어렸던 12월의 한때로 돌아가게 된다.
초등학생의 나는 이맘때쯤이 되면 문방구를 들락거렸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가 흔하지 않았기에 가장 행복한 볼거리는 문구점에 있었다. 알록달록한 색종이의 선명한 색상에서 나는 새것 냄새에 오래 코를 대보기도 하고, 색색의 튜브형 물감 박스를 쓰다듬어 보기도 하면서 더 크고 더 고급스러운 문구에 흥분하던 때였다. 더구나 12월이 되면 어김없이 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카드와 연하장을 만드는 것이었다. 하얗거나 까만 켄트지를 곱게 말아서 겨드랑이에 끼고, 색종이를 오려 붙일 풀과 반짝이 가루와 하얀 솜을 골랐다. 까만 바탕에 하얀 물감을 꾹꾹 눌러 작은 눈송이를 만들고 솜으로 누덕누덕 큰 눈송이도 붙이고 초록 색종이로 크리스마스트리를 오려 붙였다. 빨간 옷으로 단장한 산타를 만들고 솜으로 산타 할아버지의 콧수염을 붙였다. 군데군데 풀칠을 해두고 그 위에 노란 반짝이 가루를 뿌리면 귀엽고 앙증맞은 카드가 완성된다.
연말이 다가오면 이렇게 카드를 만드는 것이 큰 재미였고 중요한 일이었다. 방바닥에 어질러놓고 자르고, 그리고, 붙이는 작업은 참 행복했다. 누구에게 보낼 것인가에 따라 카드의 그림은 달라졌다. 그렇지만 그 카드들의 접점은 사랑이었다. 카드의 앞장을 펼치고 간지는 표지보다 좀 짧게 붙여서 내용을 기록했다. “메리 크리스마스!” 그런 즐거운 인사가 하얀 속지를 가득 메우면 마침내 만족해하며 카드를 접었다.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가난한 아이에게 온/서양 나라에서 온/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카드처럼//어린 양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진눈깨비처럼”(김종삼의 시 ‘북 치는 소년’ 전문) 한밤중에 느닷없이 내려진 계엄령 이후 어수선해진 이때에 김종삼의 이 시는 묘하게 다가온다. 우리 역사에서 큰 고통의 시간이었던 6·25 이후, 전쟁에 지치고 폐허 된 이 땅의 가난한 아이가 느낀 연말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어쩌면 배고픈 시간이 가장 길었을 때였으므로, 연말이니 연초니 하는 끝과 시작의 의미에 대해서는 별다른 인지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서양 나라에서 보내온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카드는 아이에게 필요한 그 어떤 것도 담겨있지 않았다. 카드와 아이, 이 사이에 무슨 내용이 있겠는가. 그래도 어린 양의 등성이에 반짝이는 눈은 지상에 떨어진 별처럼 가난한 아이에게 낯선 설렘을 잠깐 주었으려나. 북 치는 소년의 그림에서 여린 북소리라도 들었으려나. 그러나 어쩌나, 가난한 아이에게 이런 황홀경은 단지 내용 없는 아름다움일 뿐이었다.
아이들에게조차 “내용 없는 두려움”을 주었던 최근의 사태는, 어쩌면 아이들에겐 “내용 없는 북소리”로 들렸을지 모른다. 우리 정치의 본질과 한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지금의 이런 소요가 얼른 지나가기를 종용할밖에…. 그러면 조용하고 평화로운 나라에서 온 우리의 늦은 카드를, 어느 가난한 오지 나라의 아이가 행복하게 받을 수 있겠지. 그들에게도 카드는 내용 없는 아름다움을 담겠지만, 눈이 누덕누덕 내리는 한국의 풍경이 그들에게 어떤 신비와 황홀이 되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