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와우리] 미국과 민주주의 동맹국

美 대외정책, 민주주의가 기반
韓 비상계엄에 우려 표명 이유
적법한 방식으로 사태 풀어야
국제사회의 우려 없앨 수 있어

지난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국무장관이었던 마이크 폼페이오는 대중국 견제를 위해 유사입장국, 혹은 민주주의 국가 간의 동맹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가치외교를 지향하지 않을 것이라는 일각의 예측과는 달리, 트럼프 1기 행정부는 중국의 정치체제와 중국의 인권 상황에 대해 거침없이 비판하였다. 물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적 차원의 동기가 작용했겠지만,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가치는 미국 국가정체성과 글로벌 리더십을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정구연 강원대 교수·정치외교학

미국 대외정책을 구성하는 이념으로서의 윌슨주의(Wilsonianism)는 미국의 민주주의 전파 및 확장 정책의 배경이 되어왔다. 미국의 민주주의 전파 정책은 새로운 것이 아니며, 미국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는 상황 인식에 대응하는 안보 이념으로서 작동한다.



미국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1차 세계대전 참전의 동기를 ‘민주주의에 안전한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to make the world safe for democracy)’라고 언급했던 사실이 이를 보여준다. 이후 2003년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전쟁과 중동지역 민주주의 재건 정책을 정당화하는 기제로서도 윌슨주의는 활용되었는데, 예컨대 부시 대통령은 ‘자유에 도움이 되는 평화를 위해 싸운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러한 언급들은 단순 수사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할 수도 있고, 또한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인 수사라고 비판할 수도 있으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윌슨주의는 미국의 대외정책과 외교의 범위를 구획하는 기제라는 점이다. 물론 냉전기 미국은 권위주의 정권과도 전략적 협력을 유지해왔기에 윌슨주의가 위선적이라고 비판받기도 했지만, 냉전 종식 이후로도 미국의 민주주의 동맹 및 파트너십에 대한 강조는 항상 존재해왔다.

이는 동맹국의 민주주의 체제가 내포한 견제와 균형의 원리, 그에 따른 지도자 권력 남용 가능성의 방지, 불확실성을 줄여나가는 법치에 의한 정국 운영이 미국에도 이익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더욱이 민주주의는 해당 국가 국민 다수의 결정에 의해 작동함으로써 정당성도 확보하게 된다. 대외정책적으로도 마찬가지이다. 민주주의 국가들은 규칙 기반 국제질서에 대부분 동의하며 안정적인 국제관계 운영을 위해 협력한다.

윤석열정부의 비상계엄 선포 사건에 대해 미국이 우려를 표명하고, 한국의 헌법에 따라 문제가 해결되길 기대한다고 한 발언의 배경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한국은 동아시아 역내 안보 유지를 위해 협력하는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라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고 한반도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한국과의 군사·안보협력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미·중 경쟁이 격화되는 지금의 시점에서 미국과 체제를 달리하는 권위주의 국가들이 늘어가고 이들 간의 협력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미국에게 매우 우려되는 상황이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 북한, 그 외 중동 불량국가들 간의 협력이 눈에 띄게 늘어가는 상황 속에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 내에 벌어진 비상계엄 선포 사태는 상당히 위험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미국은 미·중 경쟁 맥락에서 초당적으로 ‘유사입장국(like-minded countries)’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이는 전략적 이익뿐만 아니라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 및 파트너 국가가 미국에 중요하다는 의미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의 민주적 정체성은 이미 비상계엄 선포사태에 대한 국민의 발 빠른 대응으로 보여주었다.

이제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헌법과 법치에 근거한 문제 해결을 통해 국민이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얼마나 정당성 있는, 적법한 방식으로 현재 상황을 풀어나가느냐에 따라 국제사회의 우려도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정구연 강원대 교수·정치외교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