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더 화가 난다.”
12일 윤석열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네 번째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지만 국민의 반응은 오히려 더욱 싸늘해지는 모양새다. 이날 윤 대통령의 담화를 접한 대다수의 시민은 20분 넘게 진행된 담화가 계엄 선포의 정당성을 설명하기보다는 자기변호와 퇴진 요구 거부에 치중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퇴근 후 매일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있다는 직장인 김지수(26)씨는 “이번에 처음으로 긴 시간 담화를 한다고 해 수긍할 만한 설명이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며 “국회의원 체포 관련 증언이 잇따르는데도 해명은 전혀 없다. 계엄군 투입이 치안 유지를 위한 것이었다는 주장은 어떤 국민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투자회사 직원 박지환(31)씨는 “윤 대통령이 경제 위기 상황을 언급했지만, 사태를 악화시킨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며 “진정으로 국가 경제를 걱정한다면 혼란으로 경제 지표가 더 나빠지기 전 결단을 내려야 한다. 국민 생계를 고려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강조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데이터 조작’ 의혹 설명 역시 미흡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자신을 보수 성향이라 밝힌 김모(63)씨는 “북한의 사이버 공격이나 보안 시스템 문제는 이미 알려진 사실”이라며 “새로운 증거가 제시됐다면 탄핵 반대 여론이 형성될 수 있었겠지만 이번 담화는 기대 이하였다”고 평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도 “전 국민을 불안하게 해놓고 제대로 된 사과가 없다” 등의 반응이 줄을 이었다.
다만 일각에선 “계엄을 지지하지 않고 방법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만 담화 내용은 이해가 간다”, “야당의 책임도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탄핵까지 가면 정국이 너무 혼란해질 것”이라며 탄핵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담화 발표 후 노동계와 교육계 등에선 잇따라 비판 성명을 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책임을 회피하고 자기변명과 거짓말로 점철된 담화에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다”며 “이번 담화는 전 국민을 상대로 내란을 멈추지 않을 것을 선포한 것과 마찬가지이며, 비상계엄이 삼류 저질 음모론과 망상에서 비롯된 것임을 스스로 자백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탄핵은 당연하고 신속한 체포 등을 통해 즉각적인 직무 정지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담화는) 한마디로 범죄자의 망언에 불과하다. 즉각 탄핵, 구속시키자”라는 성명을 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도 “이런 대통령이 배출된 것 자체가 대한민국 공교육의 수치”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전교조는 “어디서 배운 버릇인지 모르겠지만, 교사들은 국민과 싸우라고 가르친 적 없다”며 “국민을 상대로 ‘광란의 칼춤’을 벌이는 대통령을 1분 1초라도 빨리 구속, 탄핵하라”고 주장했다. 환경운동연합은 “(담화에) 진정성 있는 사과와 책임 있는 퇴진 계획은 없었다”며 조속히 퇴진해 수사를 받으라고 촉구했다.
시민사회계에선 대규모 시위를 예고했다. 탄핵소추안의 국회 본회의 보고가 이뤄지는 13일 대학 총학생회가 모인 ‘총학생회 공동포럼’은 서대문구 연세로 일대에서 대통령 퇴진 요구를 위한 총궐기 집회를 진행한다. 집회에는 20여개 대학 총학생회가 참여할 예정이다. 민주노총·민변·참여연대 등 1549개 시민사회단체 연대체인 ‘윤석열 즉각 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은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이 진행되는 14일 오후 3시부터 국회 앞에서 ‘범국민 촛불대행진’을 개최한다는 방침이다.
13∼14일 외부인의 국회 출입은 전면 제한된다. 국회사무처는 이날 “13일과 14일에는 국회공무원증 또는 국회출입증을 소지한 사람만 국회 외곽문을 통해서 출입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