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샌드위치를 진짜 음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국 야당대표가 언론의 인터뷰 도중 자신의 일상을 설명하면서 내놓은 한 마디가 현지 정치권에서 뜻밖의 논쟁을 촉발했다. 12일(현지시간) 영국 BBC, 가디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케미 베이드녹 보수당 대표와 키어 스타머 총리가 ‘샌드위치 발언’을 두고 신경전을 벌였다.
시작은 베이드녹 대표의 지난 11일 언론 인터뷰였다. 베이드녹 대표는 취임 한 달을 맞아 진행한 인터뷰에서 바쁜 일상과 관련해 ‘점심먹을 시간은 있느냐’는 질문에 “점심시간이 뭐냐. 그건 약골들이나 갖는 것”이라며 자신은 음식을 가져와 일을 하면서 먹곤 한다고 답했다. 이어 “때로는 스테이크를 가져와 먹는다”며 “나는 샌드위치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다. 샌드위치는 진짜 음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빵이 눅눅하면 손에 대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이 발언을 두고 스타머 총리 측이 저격에 나섰다. 총리실 대변인은 이튿날 “스타머 총리는 베이드녹 대표의 말에 놀랐다”며 “총리는 샌드위치 점심식사를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것은 참치 샌드위치이고, 가끔 치즈 토스트도 즐긴다”고 밝혔다. 또 샌드위치는 “영국의 전통”이라며 샌드위치의 연간 경제 기여도가 80억파운드(약 14조5000억원)에 이른다는 영국 샌드위치 협회 추산 통계까지 제시했다.
그러자 베이드녹 대표도 엑스(X·옛 트위터) 계정을 통해 “총리는 점심에 관한 내 농담에는 대꾸할 시간이 있으면서 우리의 음식을 생산하는 농민에게 쏟을 시간은 없는 것 같다”고 지지 않고 응수했다. 그는 “보수당은 농민의 삶을 망가뜨리는 이념적 공격인 ‘가족 농장세’를 철회시키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샌드위치 발언’에 대한 공격은 다른 당에서도 이어졌다. 극우성향 영국개혁당의 나이절 패라지 대표는 “베이드녹 대표는 점심이 약골들이나 먹는 것이라고 하지만, 나는 점심은 꽤 멋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바쁜 날에는 사무실에서 샌드위치를 먹는다. 베이드녹은 그것조차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비꼬았다.
이같은 주제가 정치적 공방 소재로까지 활용된 배경에는 샌드위치가 영국의 문화유산이라는 자부심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샌드위치라는 음식의 정확한 유래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그 이름은 영국 남동부항구도시인 샌드위치에 살던 존 몬태규 백작의 작위 명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몬태규 백작이 1762년 카드놀이를 하면서 식사하기 위해 빵 사이에 고기를 끼워넣은 음식을 요구한 것이 현재까지 이어진 샌드위치의 시초라는 것이다.
보수당 대표가 영국을 대표하는 ‘서민 음식’을 비하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베이드녹 총리를 향한 공세에 깔린 셈이다. 영국에서 샌드위치가 정치 공세의 소재로 활용된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15년에는 노동당 당수이던 에드 밀리밴드가 베이컨 샌드위치를 어색하게 먹는장면이 포착돼 보수당으로부터 ‘평범한 영국인과 거리가 있다’는 비판에 휩싸이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