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끝내겠다”고 공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이 다가오는 가운데 유럽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들이 대책 마련을 본격화하고 나섰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군사 지원이 축소 또는 중단되는 경우 유럽 국가들이 그 공백을 메워야 한다는 데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으나, 구체적으로 어느 나라가 얼마만큼의 부담을 하느냐를 놓고선 논란이 예상된다.
13일(현지시간) dpa 통신에 따르면 오는 18일 벨기에 브뤼셀 나토 본부에서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폴란드 5개국 정상이 모여 회의를 연다.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이 회의를 주재할 예정이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물론 유럽연합(EU)을 대표해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도 참석할 전망이다.
회의 주제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적 군사 지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에 휴전이 이뤄지는 경우 우크라이나의 안전을 보장할 방안, 특히 휴전 협정의 준수 여부 감시를 위한 이른바 ‘국제 평화유지군’ 구성 등이다.
앞서 트럼프는 당선인 신분으로 프랑스 파리를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과 만났다. 트럼프는 젤렌스키에게 러시아와 휴전을 하고 평화 협상에 나설 것을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마크롱에게는 휴전이 성사되는 경우 유럽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에 평화유지군을 파병해 휴전 협정의 이행 여부를 감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유럽 국가들은 만약 젤렌스키가 휴전 협상을 거부하는 경우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확 줄이거나 아예 끊을 수 있다고 본다. 이게 현실화하면 유럽 나토 회원국들이 나서 우크라이나를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문제는 평화유지군의 구성이다. 트럼프는 휴전 성사 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휴전 협정을 제대로 준수하는지 감시하는 임무는 미군이 아닌 유럽 국가들의 군대가 맡아야 한다는 의사가 확고해 보인다. 앞서 조 바이든 현 미국 대통령도 “미군을 우크라이나에 보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 바 있다.
이번에 브뤼셀에서 정상회의를 여는 5개국은 나토에서 미국 다음으로 영향력이 큰 나라들이다. 영국과 프랑스는 핵무기 보유국으로 유럽의 대표적 군사 강국이다. 독일과 이탈리아도 유럽 국가들 중에선 상당히 강력한 군사력을 갖고 있다. 폴란드는 국내총생산(GDP)의 4% 이상을 국방비로 지출하고 있으며, 이를 토대로 한국에서 K9 자주포와 K2 전차 등 최신 무기를 대거 도입했다.
하지만 자국군을 대규모로 우크라이나에 파견하는 것은 어느 나라 정부든 부담스러운 일이다. ‘휴전 이후’라고는 하지만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 사이에 언제든 국지전이 일어날 수 있고 이 경우 평화유지군도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는 지난 12일 일부 언론이 “평화유지군에 폴란드군이 포함될 것”이라고 보도하자 즉각 부인했다. 유럽 국가들 사이에 서로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눈치 보기가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