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뛰어드는 계기가 된 하와이 진주만 공습 당시 살아남은 참전용사가 10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4일(현지시간) ABC 방송에 따르면 미 해군 소속 2차대전 참전용사 밥 페르난데스가 지난 11일 캘리포니아주(州) 로디에 있는 조카의 집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유족은 “고인이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1924년생인 페르난데스는 1941년 12월7일 당시 17세 나이로 미 해군에 복무하고 있었다. 함정 ‘USS 커티스(Curtiss)’의 승조원이던 그는 취사병으로서 동료 승조원들에게 음식을 배식하다가 갑자기 경보음이 울리는 것을 들었다. 창문을 통해 일본 국기를 상징하는 빨간 원이 그려진 항공기가 함정 옆을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제서야 적의 공격이 시작됐음을 깨달은 페르난데스는 다른 동료들과 선내 포탄 보관실로 달려가 함포 사격 준비를 도왔다.
훗날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기 때문에 약간 무서웠다”며 “승조원 일부는 기도를 하거나 울음을 터뜨렸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일본군의 진주만 공습으로 USS 커티스는 승조원 21명이 전사하고 60명이 다치는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미군 전체 전사자 수는 2300명이 넘는데 절반가량인 1177명은 함정 ‘USS 애리조나’에 승선하고 있던 중 일본군 공격으로 배가 침몰하며 목숨을 잃었다.
그때까지 2차대전의 국외자로서 전황을 지켜보기만 하던 미국은 진주만 공습을 계기로 일본, 독일 등 추축국에 선전포고를 하고 전쟁에 뛰어들었다. 미군의 원자폭탄 투하 직후인 1945년 8월15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 의사를 밝히며 비로소 전쟁은 끝났다.
도합 6년간 해군에서 복무한 페르난데스는 종전 후 캘리포니아주에 정착했다. 통조림 공장의 지게차 운전사로 일하며 결혼하고 가정을 일궜다. 65년간 해로한 부인 메리 페르난데스는 꼭 10년 전인 2014년 먼저 세상을 떠났다.
진주만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미국은 매년 12월7일을 추모일로 지정하고 하와이에서 기념 행사를 연다. 페르난데스는 그동안 이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해왔으며 올해도 어김없이 하와이 여행을 준비했다고 한다. 유족은 “12월7일이 다가오는데 건강 상태가 너무 나빠 참석을 포기했다”며 아쉬워했다. 페르난데스의 타계로 진주만 공습을 겪은 참전용사 중 생존자 숫자는 16명에서 15명으로 줄었다고 ABC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