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를 철권 통치했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반군에 의해 끝내 무너지자 왕정이나 독재권력을 통해 강력한 통치를 유지해온 아랍 국가 지도자들 사이에서 ‘제2의 아랍의 봄’에 대한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시리아의 정권 교체가 자국에 영향을 미칠까 걱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1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요르단 등 중동 국가 지도자들은 알아사드의 축출과 새 정부의 등장이 자국의 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들은 알아사드 정권 붕괴 후 시리아의 정치 혼란 가능성을 우려하면서 이슬람주의 단체인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HTS)이 이끄는 반군이 정권을 잡는 과정을 경계 섞인 눈초리로 지켜보고 있다. 파와즈 게르게스 영국 런던정경대(LSE) 교수는 “시리아 주변 아랍국들은 이슬람주의자들이 시리아의 권력 공백을 메우고 자리 잡아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10년 시작된 ‘아랍의 봄’ 시기 심각한 정치 혼란을 겪었던 아랍 국가들은 대중을 상대로 한 이슬람주의 정치운동의 파급력에 강하게 위협을 느끼고 있다. ‘아랍의 봄’ 당시 시민들은 정부와 기득권층의 부패, 빈부 격차, 높은 청년 실업률 등에 분노해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 나섰고, 여기에 이슬람 정치운동이 결합하면서 리비아, 이집트, 예멘 등에서 정권이 교체됐다.
특히, 시리아의 상황을 가장 우려 섞인 눈초리로 보는 나라는 ‘아랍의 봄’이 진행 중이던 2012년 이슬람 정치운동 단체 ‘무슬림 형제단’으로 정권 교체가 이뤄졌던 이집트다. 이듬해 쿠데타로 무슬림 형제단을 밀어내고 정권을 잡은 압델 파타 엘시시 현 이집트 대통령은 HTS 같은 이슬람 원리주의 조직이 이웃 나라 시리아에서 정권을 잡는 것을 심각한 이념적·실존적 위협으로 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단 아랍국들은 표면적으로는 시리아의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요르단과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레바논 등 아랍 7개국 외무장관은 이날 홍해 연안 아카바에서 시리아 문제를 논의하는 고위급 회담을 열고 평화적인 정권 이양을 촉구했다. 아이만 사파디 요르단 외무장관은 회담 뒤 연 공동 기자회견에서 “정권 이양은 시리아의 모든 정치·사회 세력이 참여하는 포용적인 과정이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시리아의 영토주권이 존중돼야 한다는 데에도 이견이 없었다”며 알아사드 정부 붕괴 뒤 시리아 영토를 침범하고 대규모 공습을 감행한 이스라엘군을 비난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정권 교체기를 틈탄 시리아 영토 점령 시도를 더욱 노골화하고 있다. AFP통신은 13일 이스라엘 카츠 이스라엘 국방장관이 자국군에 이번 겨울 동안 북부 접경지대 넘어 시리아 영토 내 완충지대에 주둔할 것을 명령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은 알아사드 정권 축출 직후인 8일 북부 점령지 골란고원 경계를 넘어 50년 만에 처음으로 시리아 영토 안쪽으로 진입해 비무장 완충지대에 병력을 주둔시킨 바 있다. HTS의 수장 아메드 알샤라는 이날 이스라엘군의 시리아 완충지대 주둔에 대해 “역내 부적절한 긴장 고조의 위협”이라고 비난하면서도 “시리아는 새로운 갈등을 벌일 여유가 없어 분쟁으로 이끌려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