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경제 한고비 넘겼지만… 저성장·트럼프리스크 첩첩산중 [’尹 탄핵’ 가결 이후]

대내외 악재 여전… 대책 시급

11월 카드소비 올 두 번째로 낮아
대출연체 614만명… 서민들 ‘벼랑끝’
트럼프 2기 출범 통상환경 악화
내수 부진·수출 둔화 이중고 계속

앞선 탄핵정국과 달리 호재 없어
전문가 “추경 조속 마련하는 등
정부·정치권 경제안정 힘 모아야”
소상공인들도 “초당적 협력” 호소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면서 한숨을 돌렸지만, 내수 부진이 지속되는 가운데 내년도 1%대 저성장이 예고되는 등 경제 여건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내달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2기 출범과 맞물려 수출 하방압력이 높아지는 등 지난 두 번의 탄핵심판 국면과 달리 대외여건도 우호적이지 않은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정치권과 정부가 원만한 협치를 통해 경제안정을 꾀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다. 소상공인들도 “정치권은 앞으로 초당적으로 협력해 경제 살리기에 올인해 달라”고 호소했다.

탄핵 가결… 환율에 어떤 영향 줄까 15일 서울 중구 명동의 환전소 전광판에 세계 각국의 환율이 표시돼 있다. 전날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통과되면서 정치적 불확실성은 일부 해소됐지만 내수 부진, 수출 둔화 등 한국 경제의 어두운 분위기는 지속되고 있다. 연합뉴스

15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달 카드 승인액은 전년 동월 대비 2.9% 증가하는 데 그쳤다. 10월 증가폭보다 1.7%포인트 올랐지만, 올해 전체적으로 보면 두 번째로 낮은 수준이다. 승용차 판매량과 백화점 카드 승인액은 각각 1.7%, 5.5% 감소하는 등 상품 소비는 좀처럼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수출은 1.4% 느는 데 그쳐 10월(4.6%)보다 증가폭이 크게 둔화됐다.

서민경제는 벼랑 끝에 몰리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민금융진흥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저신용·저소득층(신용평점 하위 20% 이하이면서 연소득 3500만원 이하) 정책금융상품인 소액생계비 대출 연체율은 지난 10월 기준 29.7%로 역대 최대에 달했다. 지난 10월 말 신용정보원 채권자 변동정보 시스템에 등록된 연체 중인 개인 및 개인사업자 차주 수는 614만4000명이며, 그 잔액도 49조4441억원으로 50조원에 육박했다.

 

탄핵안 가결로 정치적 불안정성은 어느 정도 해소됐으나 이처럼 경제상황은 여전히 엄혹하기만 하다. 지난 두 번의 탄핵 국면에서는 대외적으로 좋은 상황이 전개돼 충격을 흡수했지만, 지금은 그와 상반된 상황이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과거 탄핵 국면에는 중국의 고성장(2004년), 반도체 경기 호조(2016년) 등 우호적인 대외여건 덕분에 수출개선을 통해 성장세를 뒷받침할 수 있었다. 반면 이번에는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통상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반도체 등 주력산업은 글로벌 경쟁 심화로 어려움이 커진 실정이다.

 

현재 한국 경제에는 ‘저성장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진 상태다. 한국은행은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9%로 하향 조정했고, 골드만삭스도 1.8%로 제시하는 동시에 하방 가능성을 강조하는 등 글로벌 투자은행(IB)의 평가도 그늘을 더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1.7%로 제시하면서 0.5%포인트나 내려 잡기도 했다.



성장률이 떨어지면 고용시장도 타격받을 가능성이 커지는 등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앞서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내년 취업자 수 증가폭이 14만명으로 올해(18만명)보다 낮아질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이에 비상계엄 사태 여파로 통과된 감액 예산을 보완하기 위해 추가경정예산안을 조속히 마련하는 등 정치권과 정부가 합심해 경기 회복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국내외 기관의 조언이 나온다.

한은은 “과거 탄핵 국면 시 경제정책이 정치 프로세스와 분리 집행되고 경제 시스템이 정상 작동한다는 신뢰가 유지되면서 그 영향을 감내 가능한 수준으로 관리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금까지는 (정부가) 야당을 배제한 정책을 실시한 측면이 있었다. 야당은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예산 삭감으로 대응하면서 정치가 작동하지 않았다”면서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서 트럼프 2기 대응이라든지 추경 편성 등 중요한 현안은 정치권과 정부가 협의해 무리 없이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팀은 이날 긴급회의를 열어 시장 안정을 위한 메시지를 내놨다.

최상목 부총리 “시장 안정 최선”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 세 번째)이 1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긴급경제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면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최 부총리는 이 자리에서 “우리 경제의 향방을 좌우할 매우 중요한 시기인 만큼 국회와 더욱 긴밀히 소통하겠다”고 밝혔다. 남정탁 기자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이날 오후 긴급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고 “대외신인도 제고의 핵심인 외국인투자에 대한 인센티브를 획기적으로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경제·외교부처가 함께하는 ‘대외관계장관 간담회’를 정례화해 경제협력과 통상 현안, 공급망 안정성을 점검하고 즉각 대처하겠다”며 “반도체와 항공·해운물류 분야에 이어 석유화학, 건설 분야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방안도 바로바로 마련하겠다”고도 했다. 나아가 “재정, 공공기관, 민간투자 등 가용재원을 총동원한 내년도 상반기 신속집행 계획을 곧 발표하고, 취약계층을 위한 추가 지원방안도 과감하게 강구하겠다”고 덧붙였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예약 취소와 소비 위축으로 송년특수는커녕 가뜩이나 어려운 소상공인의 처지가 극한으로 내몰렸다”며 “국면이 전환된 만큼 소상공인 매장을 찾아주길 간곡히 당부드린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가 통합과 민생 안정의 길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도 입장문을 내고 “국회는 추경을 통한 지역화폐 예산 확보 등의 물가 안정화와 소비 활성화 대책, 플랫폼 경제의 공정한 거래 확립, 독과점 방지, 자영업 부채 문제 해결을 위한 신속한 대안을 제시하고 대통령 권한대행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를 적극 수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