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면서 한숨을 돌렸지만, 내수 부진이 지속되는 가운데 내년도 1%대 저성장이 예고되는 등 경제 여건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내달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2기 출범과 맞물려 수출 하방압력이 높아지는 등 지난 두 번의 탄핵심판 국면과 달리 대외여건도 우호적이지 않은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정치권과 정부가 원만한 협치를 통해 경제안정을 꾀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다.
◆짙게 드리워진 ‘저성장 그늘’
15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달 카드 승인액은 전년 동월 대비 2.9% 증가하는 데 그쳤다. 10월 증가폭보다 1.7%포인트 올랐지만, 올해 전체적으로 보면 두 번째로 낮은 수준이다. 승용차 판매량과 백화점 카드 승인액은 각각 1.7%, 5.5% 감소하는 등 상품 소비는 좀처럼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수출은 1.4% 느는 데 그쳐 10월(4.6%)보다 증가폭이 크게 둔화됐다.
서민경제는 벼랑 끝에 몰리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민금융진흥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저신용·저소득층(신용평점 하위 20% 이하이면서 연소득 3500만원 이하) 정책금융상품인 소액생계비 대출 연체율은 지난 10월 기준 29.7%로 역대 최대에 달했다. 지난 10월 말 신용정보원 채권자 변동정보 시스템에 등록된 연체 중인 개인 및 개인사업자 차주 수는 614만4000명이며, 그 잔액도 49조4441억원으로 50조원에 육박했다.
탄핵안 가결로 정치적 불안정성은 어느 정도 해소됐으나 이처럼 경제상황은 여전히 엄혹하기만 하다. 지난 두 번의 탄핵 국면에서는 대외적으로 좋은 상황이 전개돼 충격을 흡수했지만, 지금은 그와 상반된 상황이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과거 탄핵 국면에는 중국의 고성장(2004년), 반도체 경기 호조(2016년) 등 우호적인 대외여건 덕분에 수출개선을 통해 성장세를 뒷받침할 수 있었다. 반면 이번에는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통상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반도체 등 주력산업은 글로벌 경쟁 심화로 어려움이 커진 실정이다.
현재 한국 경제에는 ‘저성장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진 상태다. 한국은행은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9%로 하향 조정했고, 골드만삭스도 1.8%로 제시하는 동시에 하방 가능성을 강조하는 등 글로벌 투자은행(IB)의 평가도 그늘을 더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1.7%로 제시하면서 0.5%포인트나 내려 잡기도 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금까지는 (정부가) 야당을 배제한 정책을 실시한 측면이 있었다. 야당은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예산 삭감으로 대응하면서 정치가 작동하지 않았다”면서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서 트럼프 2기 대응이라든지 추경 편성 등 중요한 현안은 정치권과 정부가 협의해 무리 없이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공행진 원·달러… 진정될 것으로 보이지만
15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전날 오전 2시 원·달러 환율은 13일 주간거래 종가(1433.00원·오후 3시30분 기준) 대비 2.20원 오른 1435.20원에 거래를 마감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3일 비상계엄 선포 후 변동성이 확대되는 모습을 보였다. 그 전에도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당선으로 1400원을 넘나들었는데,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이 더해져 지난 일주일 동안 장중 고가는 1430원대를 유지하며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지난달 월평균 1393.38원이었던 원·달러 환율은 이달 들어 13일까지 평균 1417.20원으로 올라섰다.
탄핵안 가결은 우리 외환시장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는 게 중론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미국 달러의 강세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환율 하락폭이 크지 않겠지만 정치적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제거되면서 변동성은 줄어들 것이란 관측이다.
한국은행 비상대응 태스크포스(TF)는 이날 ‘비상계엄 사태 후 금융과 경제 영향 평가’ 자료를 내고 “국회 탄핵안 가결 후 정치 프로세스와 관련한 예측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완화될 것으로 기대되지만 향후 상황을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헌법재판소 심판 결과와 관련한 불확실성은 남아 있지만, 과거 사례에 비춰 빠르면 2~3개월, 늦어도 6개월 내 헌재의 결정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탄핵절차 진행 여부와 관련한 불확실성은 해소됐다”고 평가했다.
◆이번주 증시, 안정화 국면 전환 가능성도
15일 금융투자업계와 한국거래소 등에 따르면 지난 13일 코스피는 전주 대비 66.30포인트(2.73%) 오른 2494.46으로 마감하며 3주 만에 반등했다. 코스닥 지수도 32.40포인트(4.89%) 오른 696.73을 기록했다.
이번주 증시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다소 해소됨으로써 안정화 국면으로 전환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위축된 개인 투자심리도 국회에서 금융투자소득세 폐지가 결정된 것을 계기로 코스닥 시장을 중심으로 회복세를 보인 만큼 앞으로도 기대가 크다.
지난 1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증시에서 반도체 업체인 브로드컴이 호실적으로 24.43%,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가 3.6% 각각 급등한 것도 우리 반도체주의 반등에 추가 모멘텀(상승동력)이 될 수 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계엄 사태 수습 과정이 속도를 내 (증시는) 안정화 국면으로 전환하게 됐다”며 “정권교체 기대가 반등 모멘텀을 강화했던 과거 사례의 재연 가능성이 있다”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사태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다만 탄핵안의 헌법재판소 심리와 사법당국의 수사 과정에서 정치적 불확실성이 재차 고조될 가능성은 여전하다. 외국인은 이달 들어 코스피 시장에서 지난 13일까지 9146억원 매도 우위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