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우스꽝스러운 유산 가운데 하나는 공화국이란 간판을 내건 수많은 나라가 사실은 세습 독재를 운영해 왔다는 사실이다. 독립하면서 공화국을 선포한 뒤 권력을 잡은 지도자들은 빈번하게 독재의 길로 들어섰고, 자식에게 권력을 물려주곤 했다. 아프리카에서 특히 가봉의 봉고가(家)나 토고의 에야데마 부자(父子)가 대표적이다. 권력 세습의 유혹은 쉽게 떨치기 어려운 듯하다.
아랍 지역의 독재도 예외는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나 아랍에미리트(UAE)는 아예 왕정이다. 보수적이고 종교적인 사회관으로 뭉친 이들 세습 왕조의 독재와 철권통치는 세계적으로 악명을 날린다.
반면 시리아의 아사드 체제는 범아랍 사회주의 운동인 바트주의 세력이 기원이다. 시리아의 공식 명칭은 시리아 아랍 공화국이며 아랍 국가들이 모두 합심해 근대로 나아가자는 진보 이데올로기를 내세운다.
1970년 쿠데타로 집권한 아버지 하페즈 알아사드는 이듬해 대통령으로 취임했고, 2000년 아들 바샤르가 대를 이어 집권했다. 시리아는 다양한 종교와 종족 집단으로 구성된 모자이크 국가다. 수니 이슬람이 다수인 사회에서 아사드 가문은 소수 시아파에 속한 알라위 공동체를 기반으로 독재해 왔다.
하지만 2011년 아랍의 봄과 함께 시작한 국민의 도전으로 심각한 위기와 내란을 겪어왔다. 시리아 내전으로 지난 13년 동안 50만명 이상이 사망했으며 수백만 명이 전쟁을 피해 해외로 나갔다. 현재 터키에는 300만 이상의 시리아 난민이 있고, 먼 유럽 독일에도 100만명의 난민 집단이 있을 정도다.
내부 세력의 강하고 거대한 도전에도 불구하고 아사드 정권이 지금까지 생존할 수 있었던 기반은 러시아와 이란의 군사적 지원이다. 2013년부터 이란은 레바논의 시아파 헤즈볼라 조직을 동원해 시리아 아사드 정권을 도왔다. 내전 동안 시리아 정규군은 마약을 제조하여 해외에 판매하는 외화벌이에 몰입했고, 저항 세력과의 전투는 오히려 레바논의 헤즈볼라가 담당했다고 볼 정도다.
러시아는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시리아 독재를 보호하는 군사 행동에 돌입했다. 대가로 러시아는 시리아에 공군 기지를 얻어 아프리카 진출의 중간 거점을 확보했고, 해군 기지를 받아 지중해의 유일한 군항으로 활용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와 전쟁으로 러시아 군사 지원 여력이 약해지면서 시리아의 아사드는 위태로운 상황에 빠졌다. 게다가 이스라엘이 레바논의 헤즈볼라를 집중 공격하면서 아사드 정부를 지탱하던 지상군 병력도 크게 약화하여 궁지에 처했다. 반군 세력이 북부 이들립에서 총공세를 시작한 11월27일부터 300㎞ 남쪽의 수도 다마스쿠스를 함락시킨 12월8일까지 불과 12일밖에 걸리지 않은 배경이다.
독재 국가는 원래 매우 탄탄하고 굳건해 보인다. 아주 오랜 기간 유지될 수도 있다. 하지만 한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삽시간이다. 과거 동독이나 소련은 반세기가 넘는 독재였으나 1∼2년에 걷잡을 수 없이 무너졌다.
최근 바그너 부대를 이끌던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반란군도 일사천리로 모스크바를 위협했다. 목숨 걸고 나서서 체제를 지킬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이제 시리아에 평화가 정착하길 희망하면서 그리고 전 세계 잔혹한 세습 독재의 종말을 기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