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세대마다 3분의 2가 사라질 것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인구 붕괴’(Population collapse)를 지적하며 우리나라의 인구 감소 현상을 언급했다. 머스크 CEO는 이전에도 “인공지능(AI)보다 세계 인구 붕괴가 인류에 가장 큰 위협이 될 것”이라면서 우리나라를 언급했다. 그는 “유럽도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들 우려가 있다”며 “출산율이 유지되거나 증가하도록 하는 게 세계 각국 정부의 우선순위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구 감소는 이미 막을 수 없는 흐름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합계출산율(여성이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2015년 1.24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올해 2분기 0.71명까지 떨어졌다. 2019년 11월부터는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를 앞질러 자연적으로 인구가 줄고 있다. 인구 절벽을 완화할 수 있는 대책과 함께 인구가 줄어든 새 시대를 준비해야 하는 시점이란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세계일보는 올해 1년간 외국인력 유치와 지역 정주율 늘리기, 출산 친화 환경 조성 등 인구 감소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짚었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개선, 노인 연령 기준 상향 등 인구 감소를 계기로 논의해야 할 문제들도 살펴봤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전문가들은 지속 가능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선 복지, 교육, 노동 등 사회 전 분야에서 ‘국가 대개조’라 불릴 정도의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6일 각 분야 전문가들에게 미래 한국 사회를 준비하기 위한 전략을 들어봤다.
◆비자정책 손봐야… 인식 개선도 필요
외국인 인구 유입은 급격한 인구 감소에 대응할 수 있는 해결책으로 꼽힌다. 국내 체류 외국인은 올해 9월 기준 269만명으로 이미 국내 총인구의 5.2%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이민·유학 등 외국인 유입이 더 활성화되려면 제도와 인식 개선이 함께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장영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경직된 비자제도를 손봐야 한다고 제언했다. 비자제도 때문에 산업 현장의 수요와 공급이 유기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장 부연구위원은 “저출생·고령화 추세로 산업 현장의 외국인력 수요는 앞으로 더 커질 것”이라며 “하지만 현재 외국인 노동시장은 계획경제 모델을 따라 수급 불균형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내국인 노동시장은 자율시장 원칙에 따라 취업과 이직이 자유롭지만, 외국인은 일자리가 구해져야만 입국할 수 있고 이직도 쉽지 않다”며 “비자제도를 자유시장 원칙에 맞게 개선해야 산업 현장의 수요와 노동시장 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수급 불균형이 심각한 분야는 농축산업과 제조업, 건설업, 일부 서비스업 등이다. 장 부연구위원은 “앞으로는 노인·장애인 돌봄 분야의 인력 부족이 더욱 심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장 부연구위원은 비자제도 자유화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내국인 일자리 잠식 우려 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수요·공급에 대한 정확한 추계를 바탕으로 외국인력으로 채워야 할 부분을 파악하고, 순차적으로 비자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장흔성 K-드림외국인지원센터장은 이런 수급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장 센터장은 “지금은 중앙 부처가 지역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외국인 노동자 유입 규모를 결정해 수요·공급 불일치가 생긴다”며 “지자체가 고용노동부·법무부 등과 협력해 한국 노동시장에 맞는 장·단기 일자리를 면밀하게 조사하고, 수요에 맞게 이민자를 늘려야 한다”고 밝혔다.
이렇게 들어온 이들이 내국인과 어우러져 살아가기 위해선 사회통합 정책도 중요하다. 장 센터장은 “외국인 이민자를 지역 주민으로 안착시키기 위해선 지자체의 적극적 행정이 필요하다”며 “외국인에게 한국의 문화와 사회적 관계를 교육하고, 내국인에게도 외국인 이민자를 잠시 머물다 가는 손님이 아닌 새로운 공동체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체류인구 늘려야… ‘베이비부머 유턴’ 효과적
인구가 줄어 소멸 위기에 놓인 지역의 정주율을 높이는 정책 마련도 필요하다.
마강래 중앙대 교수(도시계획부동산학)는 “지방 도시의 붕괴·인구 감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도시 외곽을 새로 개발하는 것보다 원도심 활성화에 집중하는 공간정책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인구가 유출되는 상황에서 외곽이 개발되면 원도심이 힘을 잃고 사람이 더 떠나는 악순환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마 교수는 “이미 개발된 도시 내부의 효율성을 높이는 고밀도 개발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집적경제(가까운 곳에 입지하면서 얻게 되는 경제적 이익)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마 교수는 “초광역적 공간전략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며 ‘메가시티’ 같은 행정통합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청년보다는 귀향귀촌을 원하고 실제 이동이 일어나고 있는 베이비부머(1955∼1974년생) 유턴에 집중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구 감소 지역은 생활인구를 늘리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생활인구는 기존 주민등록 인구, 외국인등록 인구에 체류인구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통근·통학·관광·휴양·업무 등 정기적 교류목적으로 방문해 지역에 체류하는 사람까지 포함한다.
김대성 전남연구원 사회문화연구실장은 “자연인구는 현실적으로 단기간 증가가 불가능하고, 학업과 취업으로 청년층 유출이 심각하다”며 “사회인구의 핵심인 ‘생산가능인구 유입 확대’와 ‘청년 유출 최소화’란 두 개의 축을 적절히 관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인구유출은 특히 여성 청년층의 유출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생활인구를 늘리려면 지자체가 설계하고 집행하는 광역형 비자 등 지자체의 외국인정책 권한을 확대해야 한다”며 “관광·여행 등 일시적 수요부터 취업·정주로 이어지는 장기적 수요까지 체류인구 확대에 초점을 둔 프로젝트 발굴·추진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제언했다.
◆일·가정 양립하고 교육 전환
인구 절벽을 막을 수 있는 대표적인 대책으로는 일·가정 양립 정책이 꼽힌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낸 홍석철 서울대 교수(경제학)는 “유연 근무를 활성화해 부모들이 일과 가정 중 ‘양자택일’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홍 교수는 올해 3분기 합계출산율이 2015년 4분기 이후 처음 증가한 것도 “유연 근무 활성화 정책이 효과를 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홍 교수는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끌어올리기 위해 ‘시간제 일자리 활성화’가 유효한 정책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여성가족부가 실시한 2022년 ‘경력단절여성 등의 경제활동 실태조사’에서 비취업 여성의 희망정책 1위도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 확대’(38.1%)였다. 홍 교수는 “핵심은 근로자에게 얼마나 다양한 선택지가 놓여있는가에 달린 것”이라며 “독일 등 일·가정 양립이 잘된 나라들도 시간제 일자리가 모든 것을 설명하진 않지만, 보완적인 역할을 잘하고 있다”고 했다.
인구 감소의 직격탄을 맞은 교육계에선 이번 기회에 교사 대 학생 비율을 줄이는 등 교육 질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학령인구 감소를 기회로 삼아 학생 한 명 한 명에 대한 투자를 늘려 국가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수(교육학)는 “통계에 따르면 10년 후 초등학생 1000만명이 줄고 20년 뒤엔 일하는 사람이 반으로 줄어든다. 국가 경쟁력이 반으로 줄 수도 있는 것”이라며 “6기통 엔진으로 달리던 차가 3기통으로 달릴 수 있는 역량을 키우려면 강점을 살리기 위한 맞춤형 학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 압축성장시대에는 60명을 한 반에 두고 수업해도 되지만 지금은 맞춤형으로 관찰하고 한 명 한 명을 일당백으로 키워 적재적소에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교사 대 학생 비율을 줄이고 디지털 기반 맞춤형 학습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학령인구가 감소하는 만큼 교육교부금 예산을 줄여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러나 배 교수는 “학령인구가 줄었다고 예산을 줄이는 것은 어리석은 소리”라고 일축했다. 그는 “인구가 줄어서 예산을 줄이면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밖에 안 된다. 우리 교육도 투자를 통해 선진국답게 가야 한다”며 “이제 교육에선 ‘사치’할 때가 됐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