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덕의우리건축톺아보기] 따뜻한 집이 생각나는 계절

벽이 얇고 외풍 셌던 우리 옛집
겨울엔 입김 불면 성에 생길 정도
단열과 난방기술의 놀라운 발전
아랫목·윗목 이제 옛말 된 지 오래

올여름 더위가 유난히 길었는데, 올겨울 추위 역시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다. 더위가 한풀 꺾여 가을인가 했더니 어느새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다. 봄과 가을이 너무 짧다. 인생은 고역이라고 하더니 좋은 시절은 항시 짧은 법인지 모르겠다. 따뜻한 집이 생각나는 계절, 겨울이다.

요즘은 따뜻한 집을 예사롭게 혹은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예전에는 서민들의 절실한 희망 사항이었다. 우리 옛집은 벽이 얇고 문과 창문은 기밀하지 못해 바깥바람이 방안을 수시로 들락거렸다. 가난한 사람은 땔감을 구하지 못해 차디찬 방바닥에 요를 깔고 식구들 체온에 의지해 몸을 웅크리고 새우잠을 자야 했다.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정조 때 규장각 검서관을 지낸 이덕무(1741∼1793)는 몹시 가난하였지만, 겨울 추운 방에서 떨면서도 책 읽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의 글에서 그 시절 가난한 선비의 겨울 방 분위기를 살펴볼 수 있다.



“지난 경진년(1760)과 신사년(1761) 겨울, 내 작은 띠집(지붕을 짚이나 억새풀 등으로 엮은 집)은 너무나 추웠다. 입김을 불면 성에가 생겼고, 이불깃에서는 바스락바스락 차가운 공기 소리가 났다. 게으른 성격에도 한밤중에 일어나 허둥지둥 ‘한서’ 한 질을 이불 위에 죽 덮어 조금이나마 추위를 막고자 했다. 아마 이렇게 하지 않았으면 내 진작 진사도(1053∼1101, 북송의 시인으로 겨울에 솜이 없는 옷을 입고 있다가 한질에 걸려 죽었다)처럼 얼어 죽었으리라. 어젯밤에도 띠집의 모퉁이에서 매서운 바람이 불어 들어와 등불이 몹시 흔들렸다. 한참을 생각하다 ‘논어’ 한 권을 뽑아 세워서 바람을 막았는데, 그 방법이 효과가 있어서 그 상황에 잘 대처했다는 사실에 스스로 대견해했다.”

“… 을유년(1765) 겨울 11월, 서재가 너무 추워서 뜰 아래 조그마한 띠집으로 옮겨 가서 지냈다. 집은 몹시 누추하여 벽면에 언 얼음이 뺨을 비추고, 구들장의 그을음은 눈동자를 시리게 했다.”

이덕무는 서얼 출신의 가난한 선비여서 집이 보잘것없었고 겨울에 제대로 땔감을 구할 수도 없었다. 이 글에서 말하는 1760년대는 1776년 등극한 정조가 규장각 검서관으로 이덕무를 발탁하기 전이었으니, 이덕무의 살림살이가 몹시도 궁색했던 모양이다. 또, 이 시기는 전 세계적으로 한파가 몰아친 소빙하기(Little Ice Age, 14∼19세기 중반)여서 현재의 겨울보다 훨씬 추웠다. 겨울에 강물이 얼어 배가 다니지 못했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자주 보인다.

옛날 집은 벽이 얇고 방문은 기밀하지 못해 외풍이 셌다. 한옥의 벽체는 그 지방에서 나는 댓가지나 싸리 잡목, 혹은 수수깡 등을 가로와 세로로 얽어 외를 엮고 그것을 뼈대 삼아 양쪽에서 반죽한 흙을 쳐 붙인 구조라 단열 성능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또, 흙이 마르면서 수축해 벽의 가장자리를 구성하는 기둥, 중방, 하방 등 목부재와의 사이에 틈이 생기기 쉬웠다. 문과 창문은 시간이 지나면 뒤틀려 문틀과 사이가 뜨기 십상이었다. 벽체와 문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해서는 벽지를 바르고 문풍지를 덧대야 하지만, 당시 종이는 아주 비싸 서민들이 사용하기는 만만치 않았다.

외풍이 센 집이라도 아궁이에 불을 넣어 방바닥을 덥힐 수만 있으면 그래도 견딜 만했을 것이다. 당시 땔감은 산림에서 구하는 나무였기에 너도나도 나무를 함부로 베는 바람에 산은 벌거숭이가 되었다. 이덕무가 살던 한양에서는 돈을 주고 땔감용 나무를 구해야 했기에 가난한 사람들은 겨울에 가끔 한 번씩만 구들을 데울 수 있었다.

한옥의 구조를 살펴보면, 난방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방을 작게 하고 반자를 두어 천장을 낮춘다. 이에 비해 여름철에 주로 사용하는 대청은 반자를 두지 않고 상부 구조체를 드러낸다. 옛날 집에 비하면, 지금 우리가 사는 집은 따뜻하기 그지없다. 그 비결은 단열과 난방 기술의 발전에 있다. 단열은 집의 안팎으로 열이 이동하는 것을 억제함으로써 겨울철에는 실내에서 발생한 열을 집 밖으로 빼앗기지 않게 하고 여름철에는 외부의 열기가 실내로 유입되지 않도록 하여 쾌적한 실내를 조성한다. 단열을 위해서는 유리섬유나 스티로폼 같은 단열재로 구조체를 바깥에서 감싸듯이 설치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를 ‘외(外)단열’이라고 한다. 단열재를 구조체의 안쪽에 설치하는 ‘내(內)단열’은 외단열에 비해 설치가 용이하지만, 구조체가 차가워져 결로가 생겨 곰팡이가 생길 우려가 있다. 아파트의 베란다 쪽에는 겨울철에 곰팡이가 슬기 쉬운데 이 부분이 단열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난방 기술의 발전도 눈부시다. 우리의 온돌은 세계적으로 가장 에너지 효율이 높고 쾌적한 난방 방식으로 인정받고 있다. 돌로 구들을 깔아 연도를 만들어 그 속으로 아궁이에서 발생한 뜨거운 열기를 통과시켰던 전통 온돌은 이제 보일러와 연결된 온수 파이프를 바닥에 까는 방식으로 발전해 방은 물론 거실과 욕실까지 바닥을 데울 수 있게 되었다.

집이 이렇게 따뜻하게 되고 보니 우리가 사용하는 말에도 변화가 생겼다. ‘아랫목’이니 ‘윗목’이니 하는 말을 들어본 지 오래되었다. 1980년대까지는 아궁이에 구공탄을 때 구들을 덥히는 집이 많아 아궁이에서 가까운 아랫목이 따뜻하고 먼 윗목은 미지근하거나 찼다. 그러나, 지금은 온수 파이프가 깔린 바닥이면 어디든 따뜻해 아랫목 윗목이 따로 없으니 이 말을 사용할 일도 없다.

2024년 겨울, 이렇듯 대한민국의 건축 환경은 좋아졌지만, 시대착오적인 비상계엄과 이에 따른 내란 정국이 사람들을 추운 집 밖으로 내몰고 있다. 따뜻한 집을 마다하고 거리에 나선 시민들의 추위는 언제 끝나려나.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