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력·소신 부재 한계… 한동훈, 대권가도 먹구름 [‘尹 탄핵’ 가결 이후]

한동훈 與 대표 146일 만에 사퇴

‘尹 황태자·소통령’ 후광 업고 정치 입문
‘명품백 사과 요구’·‘김 여사 문자 읽씹’ 등
비대위원장·당 대표 거치며 尹과 충돌
與 의원들 “대통령과 소통할 줄 몰라”
계엄 사태 후에도 소신 없이 우왕좌왕

‘윤석열 황태자’, ‘소(小)통령’ 등 화려한 수식어를 안고 정치권에 뛰어든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16일 전격 사퇴했다. 그는 국회로 몰려든 지지자들을 향해 “포기하지 않겠다”고 외쳤지만, 그 스스로 “당대표에서 쫓겨난다”고 표현했을 만큼 극명한 추락이었다. 대통령의 후광을 엎고 정치에 나섰지만, 그만의 소신과 정치력을 보여주기보단 거듭된 ‘윤·한 갈등’ 속에서 ‘초보 정치인’의 한계를 증명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리더십과 명분, 그 어느 것도 제대로 취하지 못한 한 대표의 대권가도엔 비상등이 켜졌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당 대표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소통할 줄 모르는 사람” 정치력 한계

 

여권 내에선 한 대표의 ‘정치력 부재’가 ‘한동훈 체제’ 붕괴를 가속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4·10 총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던 한 대표는 7·23 전당대회에서 약 63%라는 당원의 지지와 기대를 엎고 정치권에 재등판했다. 이후 약 5개월 동안 소위 ‘친한(친한동훈)계’로 뜻을 함께한 의원은 20여명. 하지만 이번 탄핵안 통과에 ‘찬성표’를 던진 의원은 12명에 불과했다. 뒤이은 친한계 최고위원(장동혁·진종오)의 사퇴도 막지 못했다.

 

당초 친한계를 자처한 의원은 국민의힘 5명 중 1명에 불과했다. 숱하게 반복된 ‘윤·한 갈등’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한 대표가 지난해 12월 말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취임한 이후부터 전당대회를 거쳐 대표직에 임하는 내내 윤 대통령과의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김건희 명품백 사과 요구’, ‘이종섭·황상무 거취 논란’, ‘문자 읽씹 논란’, ‘김경수 복권 반대’, ‘의대 증원 유예’ 등 각종 현안에서 한 대표는 대통령과 엇박자를 내거나 공개 충돌도 불사했다.

 

이에 용산과 한 대표 사이에서 여당 의원들도 갈팡질팡했다. 한 초선 의원은 “한 대표가 대통령의 ‘가장 아끼는 후배’라고 하니 더 잘 소통할 줄 알았다”며 “대통령이 고집을 부리더라도 한 대표가 먼저 다가가 풀려는 시도를 해야 했는데 한 대표는 그런 소통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더라”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탄핵 국면에서 한 대표의 정치력 부재는 더욱 뼈아팠다. 특히 의원총회에서 공개적으로 친윤(친윤석열)계와 벌인 설전이나 법무부 장관 시절 야당을 향해 던진 직설적 화법을 같은 당을 향해 쏘아붙인 순간들이 그에게 독이 됐다는 평가다. 한 친한계 의원은 “의총장에서 의원들과 치고받는 모습을 보고 돌아선 의원들이 많았다. 그런 모습이 없었다면 원내대표도 친윤계에 내주지 않았을 것”이라며 “당대표가 되면 참을 줄도 알아야 하는데 그 부분이 아쉽다”고 말했다.

지난 7월 24일 열린 국민의힘 신임 지도부 초청 만찬에 앞서 대화하는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 연합뉴스

◆“부족한 콘텐츠” 정치적 소신 부족

 

한 대표만의 ‘정치적 소신의 부재’도 패착으로 지적된다. 한 대표가 정치권에 본격적으로 나선 올해 초부터 한 대표가 내세운 구호는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과 ‘격차 해소’였다. 중수청을 내세우며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와 ‘가상자산 과세 유예’ 의제를 선점한 것은 성과로 분석되지만, 그 외 분야에선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초선 비례 의원은 “한 대표는 ‘콘텐츠’가 없는 게 문제”라고 꼬집었다.

 

전당대회 때부터 ‘한동훈 캠프’에서 한 대표를 지원한 친한계 관계자는 “한 대표가 성과를 증명할 수 있는 시간이 적다고 생각했다”며 “(더불어)민주당과 선명히 각을 세울 수 있는 의제를 먼저 내세워야 했다”고 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에도 한 대표는 소신을 지켜나가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드러냈다. 반헌법적인 계엄령이 선포된 직후, 한 대표는 친한계 의원 다수와 국회 본회의장을 찾아 계엄 해제에 앞장섰다. 하지만 이내 ‘한동훈·한덕수 공동 국정운영 체제’를 내세우며 ‘탄핵반대·조기퇴진’을 주장했고, 이후 윤 대통령이 하야를 수용할 뜻이 없다는 것이 전해지자 다시 ‘탄핵 찬성’ 입장으로 선회했다.

韓, 지지자들 앞에서 “포기하지 않겠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당대표직 사퇴 기자회견을 마치고 차량에 올라 지지자들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 있다. 한 대표는 지지자들을 향해 “저를 지키려고 하지 말라. 제가 여러분을 지키겠다”고 말했고, 지지자들은 “다시 만나요”, “꼭 돌아오세요”라고 외쳤다. 국회사진기자단

한 대표는 이날 사퇴 의사를 밝히는 기자회견장에 ‘용비어천가’가 적힌 짙은 와인색 ‘한글 넥타이’ 차림으로 나타났다.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뜻이라도 드러내듯, 그가 2022년 5월17일 법무부 장관으로 취임한 날 맨 그 넥타이였다. 5분여의 짧은 입장 발표 후 즉각 기자회견장을 떠난 한 대표는 국회로 모인 50여명의 지지자를 향해 “포기하지 않겠다”고 외치고 떠났다.

 

하지만 정치력과 소신 무엇도 증명하지 못했다는 평가와 함께 그의 정치 앞날엔 먹구름이 가득하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미 수차례 기회가 있었는데 한 대표가 증명하지 못한 것”이라며 “이재명과의 싸움에서 번번이 졌는데, 대선후보로 나서는 것이 말이 되나”라며 회의감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