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미아리 텍사스’에서 일하며 홀로 딸을 키우던 30대 여성 A씨가 사채업자의 불법 빚 독촉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불법 채권추심을 한 사채업자를 구속했다. 당초 ‘경찰의 늑장 대응이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왔는데, 피해자가 숨지고 80여일이 지나서야 사채업자에 대한 강제수사에 나선 것이다.
16일 서울 종암경찰서는 30대 남성 B씨를 대부업법·채권추심법 위반 등 혐의로 전날 구속했다고 밝혔다. 불법 대부업과 채권추심에 이용된 휴대전화와 은행 계좌 등을 빌려준 8명은 전자금융거래법·전기통신사업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유치원생 딸을 홀로 키우던 피해자는 올해 9월 전북 완주 한 펜션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딸을 향해 “죽어서도 다음 생이 있다면 다음 생에서도 사랑한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고인은 생활고 탓에 올해 8월 90만원가량을 대부업체에서 빌렸지만, 수천%에 달하는 이자 탓에 채무가 한 달 만에 눈덩이처럼 불어나 상환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채업자들은 A씨가 제때 돈을 갚지 못하자 그의 가족과 지인 등에게 모욕과 협박이 담긴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등 피해자를 전방위로 압박했다. 심지어 A씨 딸이 다니는 유치원 교사에게 전화해 아이를 보러 가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현행 법정 최대 이자율은 20%로 정해져 있고, 대출을 내주면서 받은 채무자 주변인의 연락처를 활용해 채무자를 협박하는 행위는 채권추심법 위반에 해당하지만, A씨는 극심한 압박을 받는 동안 공권력의 도움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A씨가 숨지기 10여일 전 A씨 지인의 신고로 피해 상황을 인지하고도 사건 접수·배당에 시간을 지체했고, 피해자가 사망에 이르러 ‘늑장 대응’이란 비판을 받았다. 경찰은 A씨 사망 50여일 후인 지난달 12일에야 사채업자들을 입건했고, 80여일이 흐른 후에야 피의자를 구속했다.
경찰청은 이달 초 악질 불법 추심 등 불법 사금융 수사 과정에서 신속한 수사와 피해자 보호·지원을 위해 고소·고발·진정은 물론 첩보까지 수사과장이 총괄하는 방식으로 수사를 강화하겠다는 ‘뒷북 대책’을 발표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번 사건의 추가 공범을 신속히 특정, 검거하고 불법 사채업자와 채권추심 행위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수사할 것”이라고 뒤늦게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