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사람들은 편지를 자주 쓰지 않는다. 기억은 남아 있다. 과거 편지는 저마다의 애틋하고 간절한 사연을 담아 배달됐다. 그런 편지에 우표를 붙여 우체통에 넣고는 답장이 오기까지 얼마나 설레며 기다렸던가. 멀리서 자전거를 타고 오는 집배원이 보일라 치면 한달음에 달려갔다. 그렇게 편지는 단순히 안부를 묻는 것에서 시작해 인생사의 고뇌와 슬픔, 꿈과 사랑을 전했다. 디지털시대에 접어들어 편지 대신 e메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주고받는 일이 많다 보니 뒷전으로 밀렸다.
당연히 갖가지 사연이 모였던 길거리 빨간 우체통도 눈에 띄게 줄었다. 우정사업본부 집계에 따르면 2005년 1억3581만개에 달했던 우체통은 올해 6월 기준 334만개로 줄었다. 급기야 작년부터는 폐의약품 회수 용도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세종시를 필두로 서울과 전남 나주에서 폐의약품 회수사업을 진행한 결과, 지난 한 해 동안 폐의약품 1만6557건이 우체통에 수거된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보호에 기여하고 있다는 긍정적 평가가 많다. 우체통의 깜짝 변신이다.
우리나라는 한국전쟁 이후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초록 우체통을 사용했다. 그러다가 1984년 각진 모양의 빨간 우체통이 보급됐다. 국민과 애환을 함께 한 빨간 우체통의 기능과 모습이 40년 만에 바뀐다. 우정사업본부는 올 연말까지 ‘ECO(친환경) 우체통’ 90여개를 제작해 서울 시내에 시범 설치한다고 한다. 새 우체통은 우편·소포를 넣는 칸 옆에 ECO칸이 따로 있다. 여기에는 사용한 커피캡슐이나 폐의약품을 넣을 수 있다. 그간 플라스틱이었던 우체통의 재질도 철제 강판(鋼板)으로 바뀐다.
일각에선 폐의약품과 커피캡슐을 대체 왜 집배원이 수거해야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는 부정적 반응도 적지 않다. 심지어 “커피캡슐은 안에 내용물을 다 분리해서 우체통에 넣어야 한다는데 그럴 거 같으면 그냥 개인이 가정집에서 분리 배출하면 오히려 쉽지 않냐”는 지적도 한다. “관련 수거 택배서비스도 있는데 굳이 우체통을 쓰레기통으로 만들 이유가 뭐냐. 우정사업본부가 지방자치단체냐, 환경부 공무원이냐”는 성토도 이어진다. 바뀐 우체통이 탁상행정의 전형일지, 혁신일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