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권한대행 한덕수 국무총리가 양곡관리법 등 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6개 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두고 고심에 빠졌다. 한 권한대행은 국회에서 폐기된 상속·증여세법은 재추진 의사를 밝혔다.
총리실 관계자는 1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양곡법 포함 6개 법안은 17일 국무회의에 상정되지 않는다”며 “충분한 숙고와 논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헌법, 법률에 따라 국가의 미래를 위해 모든 판단을 하려고 하고 기한이 남아 있는 한 정부가 국회와 소통을 하려고 한다”며 “마지막까지 여야 의견을 들은 다음 금주 중 재의 여부를 최종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권한대행은 지난해 3월 양곡법 관련 대국민담화에서 “시장원리를 거스르는 포퓰리즘 정책”이라며 비판한 뒤 “재의 요구는 헌법이 보장한 절차”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그동안 윤석열 대통령에게 양곡법에 대해 거부권을 건의해온 한 권한대행이 이번에는 직접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거부권 시한은 21일까지다.
양곡법이 도입되면 정부가 초과 생산 쌀을 의무적으로 매입하게 돼 시장 질서가 무너지고 예산부담도 커진다는 것이 정부의 반대 논리다. 그동안 여당과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와 기획재정부도 반대의견을 피력해 왔다.
당초 이번 국무회의에서 다룰 6개 법안은 양곡법을 비롯해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농어업재해대책법·농어업재해보험법 등 농업 4법 개정안과 국회법·국회증언감정법 개정안이었다. 이들 법안은 야당이 지난달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해 지난 6일 정부로 이송됐다.
문제는 한 권한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앞으로 야당과의 협치가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이다.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한 야당의 협조가 없다면 앞으로 권한대행 체제 유지도 순탄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15일 기자회견에서 한 권한대행과의 전날 통화를 언급하며 “거부권 행사는 정치적 편향일 수가 있다는 말씀도 드렸다”며 “직무대행은 현상유지와 관리가 주 업무로 대행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압박했다.
여당에서는 한 권한대행의 거부권 행사를 지지하고 있다. 국민의힘 권성동 당대표 권한대행은 의원총회에서 “한 권한대행 체제는 이재명의 섭정체제가 아니다”라며 “재의요구권이나 임명권 모두 대통령 권한 중의 일부”라고 강조했다.
정부 이송을 앞둔 김건희 여사 특검법과 내란죄 특검법 등에 대해서는 한 권한대행의 고민이 더 깊어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김 여사 특검법에 대해서는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한 권한대행도 피의자로 연루된 내란 특검에 대해서는 수용할 것이라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편 한 권한대행은 이날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제10회 중견기업의 날’ 기념식 축사에서 중소기업에 한정된 가업상속공제 대상을 중견기업으로도 확대하는 내용의 상속·증여세법 개정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한 권한대행은 “여러 중견기업들께서 말씀하시던 상속세 분야에 대한 정부안이 마지막 예산 협상 과정의 어려움 때문에 폐기됐다”며 “그 안에 있는 상속·증여세법 완화 내용을 다시 국회에 제출해 빠른 시일 내 통과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 개정안은 가업승계 대상이 되는 기업 규모를 매출 5000억원에서 2조원으로 확대하고 공제 한도를 없애는 내용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