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손으로 세상 선 ‘전직 아이돌’ 상처 보듬다

영화 ‘힘을 낼 시간’ 18일 개봉

‘연습생 출신’ 3인방 여행 로드무비
아이돌 산업 그늘, 청춘 고민과 맞닿아

제주에 여행 온 26살 수민, 태희, 사랑은 전 재산이 98만원이다. 오해로 폭행 사건이 발생해 이 돈마저 다 나가버렸다. 한창 에너지 넘치는 청춘인데 세 사람의 표정은 한없이 가라앉아 있다. 학창시절을 아이돌 연습생으로 보냈지만 꿈을 이루지 못한 이들은 빈껍데기만 남은 듯 막막하고 위태롭다.

 

18일 개봉하는 영화 ‘힘을 낼 시간’(사진)은 인기를 얻지 못한 채 은퇴한 아이돌 세 명의 제주 여행을 담은 로드 무비다. 국가인권위원회의 15번째 인권영화 프로젝트로 기획됐다. 문화예술산업에 종사하는 청년들의 인권을 다룬다.

영화 내용을 요약하면 단출하다. 빈손이 된 세 사람은 귤 수확 아르바이트를 해서 일당을 모은다. 우연히 팬이었다는 여성도 만난다. 학창 시절 못 간 수학여행 대신 제주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자잘한 사건이 이어진다. 

 

연출을 맡은 남궁선 감독은 극적인 사건이나 재밌는 에피소드를 넣기보다 ‘별말 없이 옆에서 봐주는 친구 같은 시선’으로 영화를 만들려 했다. 실제 전직 아이돌들을 취재한 후 이들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다뤄야겠다고 결론 내렸다.  덕분에 영화는 제주 어딘가에 지금도 있을 법한 젊은이들의 여행담 같다. 다른 점이라면 세 사람의 상처 받은 내면이다. 수민은 심각한 거식증을 앓고 있다. 사랑은 신경정신과 약을 먹지 않으면 돌발 행동을 한다. 태희는 기획사에서 불합리한 일을 거부한 탓에 이미 빚이 3000만원이다.

 

영화는 세 사람의 처지를 호들갑 떨지 않고 담담히 다룬다. 과수원 주인에게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하며 지나치게 인사를 반복하는 모습, 먹지 못해 쓰러지기 직전인데 악착같이 귤을 따는 행동, “돈 벌어와”라는 농담에 트라우마를 떠올리는 대목을 통해 이들이 거쳐온 K팝 산업의 어두운 터널을 비춰 보인다. 

영화는 아이돌 산업의 병폐에서 시작했지만, 어디로 갈지 모르겠고 할 줄 아는 것도 없다고 느끼는 막막한 청춘 모두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이들에게 같이 힘을 내자고 위로를 건네는 듯하다.

 

세 배우의 연기는 특히 빛난다. 수민 역의 최성은, 태희 역의 현우석, 사랑 역의 하서윤은 각 인물의 개성이 살아 있는 자연스럽고 섬세한 연기를 보여준다.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의 음악을 맡았던 ‘모임 별’이 이 영화를 위해 따로 음악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