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행정 일원론 시대, 영혼 없는 공무원 안 돼 국민 위한 창조적 혁신정신 갖춘 新공무원 필요
정권 초기 윤석열정부가 꿈꿨던 정부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최근의 국가적 혼란 상황에서 갑자기 궁금해졌다. 인수위를 마무리하며 발표한 윤정부 국정과제를 다시 들추어보니 공정과 상식에 입각해 정책의 원칙을 바로 세우고 일 잘하는 정부혁신을 하겠노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그런데 정부 스스로가 상식적이고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작동하였는지 의문이 드는 건 나만의 생각이 아닐 듯싶다. 의료개혁이나 부동산 정책 등 굵직한 정책이 여전히 갈피를 못 잡고 있으니 정부의 의도와 달리 국민은 피곤할 수밖에 없고 지루한 대치 국면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 지경이다. 적어도 정부가 정상적이며 상식적이라고 한다면 내부의 의시소통이 원활하여 상부의 의중이 아닌 건설적인 토론을 통한 의견 수렴이 일상화되어야 한다. 개인적 신념이나 이념적으로 편향된 주장보다는 국민 대다수가 수긍할 수 있도록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실현가능한 정책 방안을 수립하여 안정적으로 추진하고 있어야 한다.
근대국가의 개념이 형성되면서 국민의 삶은 이미 촘촘하게 정부와 얽혀졌으며 특정 국가의 상황이나 시대적 변화에 따라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국민 개개인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데 힘들고 왠지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면 그 뒷감당은 누구 몫이어야 할지 분명하다.
경직된 관료문화에서 상식적이며 정상적인 정부 운영의 핵은 결국 공무원 자신들이어야 한다. 국가가 실패하는 핵심 이유인 정책이나 제도는 공무원의 손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윗사람 눈치나 살피고 승진을 위해 줄 서며 국민이나 아랫사람에겐 군림하는 모습의 전근대적인 공무원의 잔재가 있는 한 상식적인 정부는 불가능하다.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가 회자하던 때가 있었다. 20세기 초중반 정부는 만들어진 정책을 집행하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이른바 ‘정치-행정이원론‘적 사고가 받아들여졌던 때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공무원은 정권과 이념, 자기 생각과 관계없이 주어진 규정에 따라 업무에만 기계적으로 충실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영혼이 필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세월이 흘러 정부는 단순히 정책 집행뿐 아니라 정책을 만드는 역할까지 수행하면서 ’정치-행정일원론‘이 대세가 되었다. 이제 영혼없는 공무원은 오히려 정부에 해를 입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 공무원이 정책을 만들 때 그 지향점은 바로 국민이다. 영혼을 갖되 특정 정권이나 이념, 개인적인 주관이 아닌 국민을 향할 때 그런 영혼은 필요하고 가치 있는 것이다.
앞으로 정부를 이끌어가야 할 공무원은 사람으로만 구성된 사람 중심 관료 조직이 아닌 인공지능(AI)과 협업하는 이른바 신(新)공무원이며, 이들은 근본적으로 다른 조직 문화 속에서 생활할 것이다.
AI를 도구가 아닌 동료로 인식하고 어떻게 협업할 것인가 등을 현장에서 판단할 공무원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신공무원은 창조적 파괴와 도전이 두렵지 않은 탐험력을 갖추어야 한다. 이들이 관행을 의심해 보는 너지적 사고를 일상화하도록 자율성을 보장하고, 화석화된 관료제 문화를 파괴해야 한다. 과거 성공 방식에 찌든 기계식 사고에 디지털 패러다임의 변화를 끼워 넣으려다 실패한 폴크스바겐의 낡은 관습적 사고는 비단 기업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 공무원들에게 영혼을 요구한다면 정권이나 이념이 아닌 국민의 향상된 삶을 추구하는 전문성과 인간적인 노력 그리고 창조적 혁신 정신을 의미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