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경찰에 이어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사태’ 관련 사건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 이첩하면서 윤 대통령에 대한 ‘중복 수사’ 문제는 일단락됐다. 그러나 일각에선 대통령에 대한 기소권이 없는 공수처가 윤 대통령을 조사한 이후 사건을 또다시 검찰에 넘겨야 한다는 점에서 수사 비효율성에 대한 지적이 나온다. 인적 여건이 부족한 공수처가 헌정 사상 최초의 현직 대통령을 상대로 한 조사를 제대로 진행할 수 있겠냐는 우려도 있다.
검찰과 공수처가 18일 수사 이첩 문제를 두고 협의를 이뤄낸 것은 공수처와 경찰 등이 꾸린 공조수사본부(공조본)와 군검찰이 합류한 검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가 윤 대통령에 대해 제각기 소환조사를 통보하면서 수사 혼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진 데 따른 것이다. 전날 윤 대통령의 변호인단 쪽에서 적법절차를 강조하며 중복 수사 조정 필요성을 언급한 것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향후 수사·재판에서 윤 대통령 측이 검찰의 공수처 이첩 요구 불응을 근거로 위법수사나 위법 수집 증거를 주장할 수도 있는 빌미를 사전에 차단하자는 데 뜻을 모았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검찰과 경찰은 공수처장이 수사의 진행 정도와 공정성 논란 등을 감안해 중복 사건의 이첩을 요청하는 경우에는 이에 응해야 한다. 검찰은 앞서 공수처의 첫 번째 이첩 요청에 대해선 ‘검찰의 수사 진행 정도 등을 고려할 때 이첩 요청을 유지하는 것이 적절한지 재검토해 달라’며 사실상 거절하는 취지의 공문을 보냈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이번 이첩 결정으로 또 다른 수사의 비효율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계엄에 깊이 관여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및 군 관계자들에 대한 수사가 이미 검찰에서 이뤄진 상황에서 공수처가 윤 대통령만 사건만 넘겨받는 것이 수사의 연속성과 효율성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공수처는 대통령에 대한 직접 기소 권한도 없다. 판·검사나 경무관 이상 경찰관만 직접 기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수처가 윤 대통령 조사를 마치더라도 기소를 위해선 사건을 다시 검찰에 넘겨야 하는 것이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이 윤 대통령 조사에서 뒤늦게 미진한 부분을 발견하더라도 추가 조사를 진행하기가 쉽지 않다는 문제점도 있다. 기소 이후 재판에서 윤 대통령의 유죄를 입증해야 하는 공소유지 역할 역시 검찰의 몫이다. 심우정 검찰총장은 이날 협의 발표 이후 박세현 본부장 등 검찰 특수본 관계자들을 대검으로 불러 향후 수사 방향을 논의했는 데 이 자리에선 이첩 결정에 반발하는 목소리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수본 일부 구성원은 돌연 연가를 내기도 했는데, 항의성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공수처가 현직 대통령 수사를 소화할 수 있느냐는 의구심도 제기된다. 공수처는 출범 후 현재까지 5번의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5번 모두 법원에서 기각되면서 수사력이 부족하다는 논란에 시달렸다. 공수처가 3월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조사하며 본격 수사에 착수한 ‘해병대 채 상병 순직사건 수사외압’ 의혹은 수사에 진전 없이 답보상태다. 김승대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수처는 수사 능력이 의문시되고 있고 경험과 인력도 다른 기관 대비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를 의식한 듯 공수처는 이날 경찰로부터 수사관을 파견받는 등 경찰·국방부 조사본부와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공수처가 내란 수괴(우두머리)로 지목된 윤 대통령을 조사하려면 김 전 장관 등 주요 관계자 5명을 구속수사하는 검찰 특수본과의 협력이 필요하다. 윤 대통령이 받고 있는 내란 수괴,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와 같은 혐의에 대해 수사하려면 통상 하급자에 대한 수사가 먼저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대검 관계자는 “구체적인 수사 방식 등에 대해선 공수처와 협력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공수처 관계자도 “협의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일각에선 수사력 보강을 위해 검찰에서 공수처로 검사를 파견보내는 방안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공수처법은 공수처가 수사상 필요할 경우 다른 행정기관으로부터 공무원을 파견받거나 수사활동의 지원 등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공수처가 2021년 법무부에 윤 대통령의 검찰총장 시절 ‘고발 사주’ 의혹 진상조사와 수사를 담당했던 검사 6∼7명의 파견을 요청했다 철회한 사례도 있었다. 다만 검찰 내부에선 수사관 파견은 가능하지만 검사 파견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한 차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공조본과 특수본은 각각 윤 대통령에게 18일, 21일 소환을 통보했는데 소환조사 일정이 미뤄지면 결국 특검이 사건을 가져와 마무리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