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준위 방폐장’ 확보 첫 단추 채워… 태백에 연구시설 건립

정부 부지 확정… 2026년 착공

지하 500m 깊이 암반지에 건설
처분장 건립 전 안전실증 등 목적
폐기물 반입 않는 순수 연구시설
5000억 투입 2032년 완공 목표
“최대 3000억원 경제효과 기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건설에 필요한 기술 연구를 위한 지하 500m 깊이 실험 시설이 강원 태백시에 건설된다. 한국형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을 위한 긴 여정의 첫발을 디딘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8일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연구용 지하연구시설(URL) 부지 선정 평가위원회 회의를 거쳐 태백시를 건설 예정 부지로 확정했다.

강원 태백시에 건설될 연구용 지하연구시설(URL) 개념도.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URL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건설 전 실증을 위해 지하 환경에서 조사·시험하고, 안전한 처분시설을 설계하는 데 필요한 연구 활동을 수행하는 시설이다. 고준위 방폐장과는 별개인 순수 연구시설로, 운영 과정에서 사용후핵연료, 방사성폐기물은 전혀 반입되지 않는다.

 

태백에 들어서면 지하 120m 대전 방사성폐기물 지하처분 연구시설(KURT)에 이어 국내 두 번째, 전 세계적으로 37번째 URL이 된다. 미국·독일·일본 등 주요국도 URL을 운영 중이거나 과거 운영한 바 있다.

 

정부는 2021년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 등에 따라 URL을 활용해 방폐물 관리 기술 확보하기로 했다. 지난 6월 부지 공모에 태백시가 단독 신청했다.

 

태백시는 철암동 고원자연휴양림 내 화강암지대를 부지로 제시했다. 정부는 20여명의 민간 위원으로 평가위원회를 꾸려 부지 적합성, 수용성 등 기준을 바탕으로 심사해 건설 예정지를 확정했다.

 

산업부는 내년 중 예비타당성 조사 등 필요 절차를 거쳐 2026년부터 연구용 지하연구시설 건설에 착수해 2032년 완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총 사업비는 5138억원이다.

 

태백은 장성광업소 폐광 등에 따른 지역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체 산업으로 URL 유치에 나섰다. 지하연구시설이 들어서면 박사급 인력이 지역에 상주하고, 견학 시설로 활용할 수 있어 시설 운영 기간 1500억∼3000억원의 경제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 정부 내부 추산이다.

태백시는 URL을 통해 관련 스타트업 기업 활성화 및 폐광 지역의 경제자립 기반을 확보, 침체한 지역 경제를 살린다는 구상이다.

 

이상호 태백시장은 “이번 연구용 지하연구시설 공모사업 선정은 지역 공직자와 시민 모두 함께 이루어 낸 쾌거”라며 “침체한 지역경제에 큰 활력을 불어넣고 나아가 첨단 연구 도시, 청정에너지 도시로 도약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URL은 원전 확대에 필수적인 사용후핵연료의 영구처분을 위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는 2015년부터 원전 작업복 등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전용 처리장이 경북 경주에서 운영되고 있지만 사용후핵연료 등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영구 처분하는 시설은 없다.

 

현재 사용후핵연료는 개별 원전 안에 있는 대형 수조인 습식저장조에 보관돼 있는데 2030년 한빛원전을 시작으로 2031년 한울원전, 2032년 고리원전의 순으로 포화 상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처리 방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최악의 경우 원전 가동이 중단될 수 있다. 이에 정부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부지 선정 시점부터 중간저장시설은 20년 안에, 영구처분시설은 37년 안에 확보한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은 상당 기간 습식·건식 저장조에서 열과 방사능 농도를 낮춘 뒤 500m 깊이 터널에 처분용기를 넣어 밀봉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URL은 이에 맞춰 고준위 방폐장과 비슷한 깊이인 지하 약 500m에 건설한다. 이곳에서는 한국 고유의 암반 특성과 한국형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 시스템 성능 등에 관한 실험과 연구를 통해 한국형 처분 개념이 구체화할 예정이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지하 방폐장에 보관하면 지속해서 열이 나게 되는데, 지하연구시설에서는 인위적으로 열을 발생시킨 뒤 방폐물 보관용기와 처분터널·방벽 등 건물의 안정성과 내구성을 검증하는 것이다.

 

지하연구시설을 개방해 안전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에 대한 국민 신뢰를 확보함으로써 향후 영구처분시설 추진 시 협조를 받기 위한 용도로도 활용된다.

 

산업부 관계자는 “국내 고준위 방폐장이 건설되더라도 부지 선정이 URL과 별개로 진행된다”며 “고준위 방폐물 저장 시설 건설과 주민 지원 방안을 담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특별법도 조속히 통과할 수 있도록 지속 노력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