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권한대행 한덕수 국무총리가 19일 임시 국무회의에서 양곡관리법을 비롯한 6개 쟁점 법안(국회법·국회증언감정법·농수산물유통및가격안정법·농어업재해대책법·농어업재해보험법 개정안)에 대해 최종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가닥을 잡은 것은 결국 각 법안이 가진 맹점이 크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총리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헌법과 법률에 따라, 우리 국가의 미래와 국민의 시각에서 봤을 때 어떤 게 타당한지에 대해 최종 순간까지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에 따르면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 생산량이 목표량의 3~5%를 초과하거나 쌀값이 전년 대비 5~8% 이상 하락하면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정부는 이럴 경우 현재도 과잉 생산되는 쌀 생산량이 더 늘어날 것으로 우려한다. 한 권한대행은 지난해 4월에도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강제적으로 매년 시장 격리를 해야 할 상황은 농민에게 좋은 정책이 아니다”라고 설명하며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건의한 바 있다.
농수산물가격안정법 개정안은 쌀 외에 다른 농산물도 기준 가격을 정하도록 하고, 농산물 가격이 기준 가격 아래로 떨어지면 정부가 해당 작물 생산자에게 그 차액을 보상해 주도록 하는 법이다. 이럴 경우 작물 간 수급에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
농어업재해대책법 개정안은 재해에 따른 농어민 피해를 정부가 전부 보상하는 법안이다. 농어업재해보험법 개정안은 재해보험에 가입인 농어민이 자연재해로 피해를 보면 보험사가 손해배상을 하고 할증을 받는 것을 금지한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재해로 인한 피해를 보상해 왔는데 이렇게 되면 그 전에 투입된 비용을 모두 보상해야 돼 정부의 기존 원칙에 금이 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 밖에 국회증언감정법 개정안은 국회가 이를 빌미로 기업이나 개인에게 자료 제출을 요구할 경우 기업의 영업비밀이 새어나갈 우려가 제기된다. 또 국회법 개정안은 국회 선진화법 이후 도입된 ‘예산안 부수 법안의 본회의 자동부의 제도’를 폐지하는 것으로, 정부 예산안 늑장 처리를 그나마 제도적으로 보완했던 장치가 사라진다는 지적이다.
결국 정부는 이 같은 이유를 바탕으로 그동안 해당 법안들에 반대 입장을 밝혀왔고, 한 권한대행도 이에 대해 고민하다 ‘헌법, 법률, 국가의 미래’ 관점에서 거부권 행사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 권한대행이 상대적으로 정쟁의 소지가 적은 양곡관리법 등 6개 정책 법안에 대해서는 거부권을 행사하고 정치적 부담이 큰 특검법에 대해서는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 식으로 타협안을 찾은 것으로 분석한다. 전날 내란 특검법과 김 여사 특검법도 국회에서 정부로 이송되며 한 권한대행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두 특검 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 시한은 다음 달 1일까지이지만 공휴일인 관계로 한 권한대행은 이달 31일까지 거부권 행사를 결정할 예정이다. 총리실은 특검법에 관해서도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토와 고민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공석인 헌법재판소 재판관 3명 임명을 두고 ‘형식적 절차’라는 안팎의 주장에 대해 한 권한대행은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여야는 한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 권한을 두고 서로 해석을 달리하며 갈등을 빚고 있다.
야당은 한 권한대행 ‘탄핵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연일 압박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권한대행에게 “거부권 행사를 포기해야 한다”며 “대행된 걸 대통령이 된 걸로 착각해선 곤란하다. 권한을 남용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묵과하지 않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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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은 한 권한대행 탄핵소추안도 준비 중이다. 특히 김 여사 특검법과 내란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탄핵 추진이 불가피하단 기류가 강하다. 황정아 대변인은 이날 최고위원회의 종료 후 기자들을 만나 한 권한대행 거부권 행사 가능성과 관련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탄핵안을 준비하고 있다”며 “양곡관리법을 포함한 6대 법안이 있고 김건희 특검법·내란 특검법을 기다리는 중인데 특검을 거부하면 탄핵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반면 여당은 양곡관리법 등에 대해서도 거부권을 행사할 것을 촉구하며 헌법재판관 임명 반대 의사를 거듭 밝혔다. 국민의힘 권성동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현재 탄핵소추인인 국회가 헌법재판관을 추천하는 행위는 마치 검사가 자신이 기소한 사건에 대한 판사를 임명하는 것과 같다”며 “소추와 재판의 분리라는 원칙에 위배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 대행은 야당이 단독처리한 법안들에 대해서도 “한 권한대행의 재의요구권 행사는 당연하다”며 “민주당이 일방처리한 국회 증언감정법에 대해 재의요구권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위헌적 악법”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 권한대행은 대통령 권한대행 직함이 들어간 명함이나 명패, 시계 등 기념품을 제작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도 알려졌다. 앞서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안 가결 때 권한대행을 맡았던 황교안 전 총리는 대통령 권한대행 직함이 새겨진 명패와 기념시계 등을 제작했다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