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자신의 탄핵심판을 심의하는 헌법재판소에 직접 나설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탄핵심판에서 ‘검사’ 역할을 하는 정청래 국회 법사위원장과 윤 대통령의 ‘맞대결’이 펼쳐질 지 주목된다. 윤 대통령의 40년 친구인 석동현 변호사는 윤 대통령 변호인단 구성에 관한 입장을 언론에 밝히면서 “윤 대통령이 법정에서 당당하게 소신껏 입장을 피력할 것”이라고 말해 윤 대통령의 심판정 출석 가능성을 시사했다. 윤 대통령의 ‘방패’를 뚫을 ‘창’ 역할은 정청래 법사위원장이 맡는다. 정 위원장은 역대 법사위원장들과 달리 이례적으로 법조인이 아닌 강성 운동권 출신이다. 그는 자신이 법사위원장이 된 데 대해 유튜브에 출연해 “좌고우면하지 않고 역풍에 두려워하지 않는 강심장이 필요해서”라고 말한 바 있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탄핵심판 대상이 됐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은 각각 7회, 17회 열린 헌법재판소 변론에 한 번도 출석하지 않았다. 대리인단을 통해서만 입장을 밝힌 것이다. 윤 대통령도 대리인단을 통해 방어에 나설 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이에 대해 석 변호사는 17일 취재진에 "당연히 변호인들보다 본인이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주장, 진술하실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 스스로 법률 전문가인 데다 12·3 비상계엄이 정당한 통치 행위라고 주장해왔다는 점에서 직접 나설 가능성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까지 지낸 형사법 전문가인만큼 수사·재판에서 적극적으로 ‘셀프 변론’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지난 12일 29분간의 대국민 담화에서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권 행사는 사면권 행사, 외교권 행사와 같은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 통치행위”라고 강변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마치 직접 쓴 변론요지서를 낭독하는 것 같다는 반응이 나왔다.
특히 탄핵심판에서 검사 역할인 정 위원장은 윤 대통령과 가장 각을 많이 세워왔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의 명분 중 하나로 감사원장, 장관, 검사들에 대한 탄핵안 남발을 지적했는데 법사위야말로 탄핵안 처리의 핵심 창구였기 때문이다. 정 위원장은 지난 14일 윤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 의결서 정본(원본)을 헌법재판소에 제출하면서 “정권은 짧고 국민은 영원하다. 국민과 정권이 싸우면 항상 국민이 승리했고, 오늘 국민의 승리를 보여줬다”고 말했다.
앞서 정 위원장은 지난 6일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대법관과 헌법재판관들을 향해 “일반 시민들이 계엄군을 몸으로 막아설 때 무엇을 했냐. 위헌이라고 즉각 얘기했어햐는 게 아니냐”고 질책하기도 했다. 이날 천대엽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은 “일반 국민들의 높은 시민의식에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하고, 저 자신부터 제 자리에서 국민의 기본권 보장의 최후 보루로서 사법부의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정원 헌법재판소 사무처장도 “이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해서 굉장히 참담한 심정”이라며 “앞으로라도 진행되고 있는 헌재 권한 사항에 대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국회 법사위원장이 최종 사법적 판단의 보루인 대법관, 헌법재판관들에 ‘위헌’ 입장을 밝히라고 압박한 데 대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많다. 현재 탄핵소추안에 대한 헌재 심의가 이뤄지고 있는 것처럼 대법관, 헌법재판관은 면밀한 심의가 이뤄진 뒤에야 입장을 밝힐 수 있는 것이지, 정치인처럼 특정 현안에 대한 위헌 여부를 밝히라는 건 헌법에 규정된 ‘삼권분립’원칙에도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대법관, 헌법재판관들에 위헌이라고 즉각 얘기했어야 한다고 호통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며 “여당 의원들도 이의제기하지 않던데 사법 영역과 정치 영역은 분명히 다르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