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 널 이 느낌 이대로 그려 왔던 헤매임의 끝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 수많은 알 수 없는 길 속에 희미한 빛을 난 쫓아가 언제까지라도 함께 하는 거야 다시 만난 나의 세계” 여의도 광장에서 들었던 여리지만 단호한 그들의 목소리는 아직도 내 귀와 입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민주주의가 칠흑 같던 밤들 속 서로가 본 서로의 빛은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가장 깊은 밤에, 그리고 밤이 깊을수록 별빛은 더 빛났다.
이번 탄핵 시위 현장에서는 이삼십대 여성들이 자신들이 가장 소중하게 아끼는 응원봉을 들고나와 그 빛으로 광장을, 대한민국의 암담한 민주주의의 미래를 밝게 비춘 것이 가장 내 마음을 뜨겁게 했다. K팝은 국가 소프트파워의 일환으로 존중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K팝을 키워낸 덕후들, 소위 ‘빠순이’들은 사실 언제나 무시당하는 존재였다. 정신 못 차리고 무지성으로 ‘오빠들’이나 쫓아다니는 살아 있는 ATM으로 취급받던 존재, 한심하다는 소리를 듣는 어린 여자애들 무리로 비하되던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사실 그들은 잘못한 엔터사를, 아티스트의 비윤리적인 잘못을 비판하며 끊임없이 집단으로 목소리를 내며 싸우는 것이 일상인 존재들이다. 해시태그를 통해 온라인으로 시위하고 근조화환을 보내며 트럭 총공을 하는 것도 팬덤에선 익숙한 시위 문화이기도 하다. 그들은 콘서트 및 공개방송을 위해 차가운 길바닥에서 버티는 것도, 떼창과 함성 역시 전문이다. 자신이 사랑하고 지켜야 하는 아티스트를 위해 언론을 감시하고 관련 정보들을 수집하고 투표와 스밍 같은 집단행동을 조직적으로 수행하는 집단지성을 갖춘 것 역시 그들이다. 다시 말해, K팝 덕후들은 민주시민으로서의 역량과 기술을 갖춘 시위에 특화된 엘리트 집단이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동시에 현실에서는 여성이라서 겪어야 하는 차별과 혐오를 일상에서 살아내고 있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러니 그런 여성들이 민주주의를 짓밟는 최악의 국가적 폭력 앞에 분연히 나선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이들이 광장을 빛으로 물들이며 바꿔 나갔던 것들은 나에게 희망으로 다가온다. 광장의 주체가 미래를 짊어질 젊은 세대 여성으로 바뀐 것, 다양한 소수자 혐오와 차별을 광장에서 사라지게 만든 것, 나이 든 세대와 서로의 문화를 배우고 이해하며 하나가 되고자 했던 것, 그리고 이제 여성적이라는 말에는 용감하고 정의롭다는 의미가 새겨지게 된 것 등을 말이다.
이지영 한국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