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내전/ 앤터니 비버/ 이혜진 옮김/ 눌와/3만3000원
1917년의 러시아 제국은 한계에 달해 있었다. 시대착오적인 러시아의 전제군주정은 1905년 피의 일요일 사건으로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낸 지 오래였고, 1914년부터 3년째 계속되고 있는 제1차 세계대전은 여기에 치명타를 날렸다. 결국 페트로그라드에서 일어난 2월혁명의 결과, 니콜라이 2세는 퇴위하고 동생 미하일 대공도 황위 계승을 포기하면서 제정은 막을 내리게 된다.
하지만 임시정부 또한 독일과의 전쟁을 이어나가면서 시민들의 지지를 잃었고,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는 10월에 적위대와 수병들을 동원한 무장봉기로 임시정부를 전복하고 볼셰비키 지도부(레닌·트로츠키·스탈린 등)가 설립한 인민위원평의회를 권력기구로 내세웠다. 이후 각지에서 장교, 카자크, 우파 사회혁명당, 체코 군단(본래 오스트리아군 소속이었으나 포로로 잡힌 후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기로 하고 러시아군에 편입되었다)의 반란이 일어났고, 이때부터 내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최대 1200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끔찍하고 거대한 ‘러시아 내전’이다.
러시아 내전은 단순히 한 나라의 ‘내전’이 아니라 러시아 제국의 붕괴 이후 독립하려는 신생 국가 핀란드, 폴란드, 발트 3국에 제1차 세계대전의 적국이었던 독일, 기존의 동맹국이었던 영국, 프랑스를 비롯한 연합국까지 개입한 국제적인 분쟁이었다. 또한 적군(赤軍)과 백군 양측이 모두 학살과 고문을 일삼았는데, 이는 한 국가 내에서 정치적·이념적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고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무력으로 말살하려 할 때 어떤 비극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스페인 내전’, ‘스탈린그라드’ 등을 집필한 저자는 러시아, 폴란드,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기록보관소에서 찾아낸 새로운 자료들, 수많은 서적과 기록들을 모았다. 책에서 러시아 내전은 페트로그라드 거리의 노동자, ‘고요한’ 돈강 초원을 행군하는 기병, 야전병원 간호사 등 다양한 인물들의 눈으로 생생하게 재구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