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 반대한다고 전입신고 안 받는 주민센터?…법원의 판단은 [법잇슈]

주민센터 “행안부 내부 지침 따른 것” 항변에도 법원, 위법 판단
시민단체 “동자동 쪽방 주민 내몰기 위한 술수…지침 손봐야”
“주민센터에 갔는데 직원이 건물주가 신고를 못 하게 한 건물이라 전입신고를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몸뚱이만 여기 있고 (주민등록상) 주소는 엄한 데 있으니 내가 여기 살아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18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인근에서 동자동 쪽방 주민이 전입신고 관련 지침을 비판하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있다. 홈리스행동 제공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에 거주하는 한 주민의 말이다. 일부 쪽방 주민들이 건물주가 동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주민센터가 전입신고를 받지 않는 일이 벌어졌는데, 법원이 이를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일각에선 주민센터의 전입신고 관련 내부지침을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고등법원(재판장 김우수)은 18일 오후 주민등록 전입신고 수리 거부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인 쪽방촌 주민 김모씨의 손을 들어줬다. 김씨는 올 1월 서울행정법원에 전입신고 수리 거부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관할 행정청인 남영동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심 법원은 7월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는데, 피고인 남영동장 측이 이에 불복해 항소했다.

 

남영동장 측은 전입신고를 거부한 이유로 내부 규정을 내세웠다. 행정안전부의 내부지침으로 정한 소유주 동의 요건이 없어 전입신고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주민등록법 제6조에 규정된 주민등록 요건을 구비하고 있음에도, 피고는 단지 내부처리기준에 불과한 ‘2021 주민등록 질의·회신 사례집’에서 정한 소유주 동의 요건을 결여했다는 이유로 이 사건 처분을 한 바, 관계 법령에 반하는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주민등록법에 따르면 시장·군수 또는 구청장은 30일 이상 거주할 목적으로 거주지를 가진 사람을 등록해야 한다.

 

대법원 역시 전입신고에서 건물 소유주의 동의 여부가 상관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대법원은 2009년 전입신고의 수리 여부는 ‘30일 이상 거주할 목적으로 거주지를 옮겼는지’로만 판단해야 한다며, “건물 소유주의 대출 관계 등 재산권 행사에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 건물 소유주가 동의했는지 여부는 전입신고 수리 여부 심사에서 고려 대상이 될 수 없고, 돼서도 안 된다”고 밝혔다.

18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인근에서 김윤진 변호사가 소송 취지와 선고 의미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홈리스행동 제공

전입신고를 하지 못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주민등록이 말소될 뿐만 아니라, 법이 정한 임차인으로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할 수 있다.

 

소송을 대리한 김윤진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는 실제 거주지에 등록하지 못할 경우 “행정청 사실 조사와 최고, 공고 등을 거쳐 거주불명자로 등록되고,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으며, 5년 이상 거주불명 기간이 지속할 경우 주민등록이 말소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주택임대차보호법상 대항력 확보, 임대주택·분양주택 신청 등과 주소를 기반으로 하는 각종 복지제도에서 불안정한 지위에 놓이는 문제들도 짚었다.

 

노숙인 관련 46개 단체가 모인 ‘2024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은 18일 서울고등법원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주민센터의 전입신고 거부가 쪽방 주민을 내몰기 위한 조처라고 비판했다.

18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인근에서 2024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이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홈리스행동 제공

차재설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의 교육홍보이사는 “이사를 했는데 주민센터에서 전입신고를 받아 주지 않는 일이 생기고 있다”며 “동자동 쪽방 건물주들이 개발 시 이주대책을 최소화하기 위한 술수”라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쪽방 주민을 내쫓기 위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다”며 “안정된 주거에서 살 수 있도록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을 서둘러 달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