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0원대 고환율 지속 우려…정부, 외환유입 관련 규제 완화 방안 발표

원·달러 환율 1400원대가 ‘뉴노멀’(새로운 기준)로 자리 잡을 것이란 우려가 커지면서 정부가 외환 수급 상황 개선을 위한 방안을 발표했다. 외환 유입을 엄격히 제한했던 기존 정책 기조를 전환해 은행의 외화유동성 확보를 지원하고, 원화용도 외화대출 규제를 완화하는 등 원·달러 환율 급등에 대응하겠다는 취지다.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한국은행·금융감독원은 20일 김범석 기재부 1차관 주재로 긴급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 컨퍼런스콜을 열고 이런 내용의 외환수급 개선 방안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20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 이날 코스피는 2,420대에서 약보합으로 장을 시작했다. 연합뉴스

이번 조치는 외환 유입을 엄격히 제한해 온 정책 기조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최근 미국 경제 호조세와 국내 정치적 불안이 겹치면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 장중 1455원을 돌파했다. 지난 3일 계엄 이후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과 외평채 가산금리가 34.4bp(1bp=0.01%포인트)와 18bp에서 최근 각각 36.3bp와 22bp로 뛰는 등 외화조달 비용이 상승했다.

 

정부는 먼저 선물환포지션 한도를 국내은행의 경우 50%에서 75%로, 외국은행 지점은 250%에서 375%로 상향하기로 했다. 선물환 포지션 한도는 2010년 10월 급격한 자본 유입과 단기 차입을 억제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이 비율을 확대하면 은행들이 외화유동성을 좀 더 원활하게 확보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

 

외국환은행 거주자들이 원화로 환전해 사용하는 외화대출에 대한 제한도 완화한다. 대·중소·중견기업의 시설 자금에 대한 외화 대출을 허용하되 환리스크 부담이 낮은 수출기업에 제한해 추진할 계획이다. 지금까지 원화용도의 외화대출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했고 중소·중견기업의 국내 시설자금에만 일부 허용해왔다. 원화로 환전하는 외화대출이 늘어날 경우 원화 수요가 증가해 원화 가치가 급등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최근 강달러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반대로 외화대출 제한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원화용도 외화대출이 늘면 시장에 외환 공급이 늘어나 원·달러 환율을 끌어내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한은은 원화용도 외화대출 제한을 완화하기 위해 내년 1월 외국환 거래업무 취급세칙을 개정할 계획이다.

 

달러 환전 없이 기존의 결제 체계를 활용해 상대국 통화로 결제할 수 있도록 현지 통화 직거래 체제(LCT)도 확대한다. 구체적으로 한국에서 인도네시아로 대금을 지급할 때 무증빙 한도를 상향하고 말레이시아 등 주요 아세안 교역국과 LCT 추가 체결도 검토할 계획이다.

 

위기 상황을 가정해 금융기관의 외화자금 부족액을 평가하고 이를 통과하지 못하면 유동성 확충계획 등을 제출하도록 하는 규제도 내년 6월까지 유예된다.

 

외환당국 간 국민연금 외환스와프 한도를 기존 500억 달러에서 650억 달러로 확대하고 만기를 2025년 말까지 연장하는 내용도 대책에 포함됐다. 국내기관이 룩셈부르크 증권거래소에 상장할 때 증권신고서 제출을 면제하는 등편의도 개선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번 대책의 시행 효과와 외환시장 여건 등을 살펴 가면서 단계적으로 제도를 확대할 방침이다. 기재부는 “외환수급 균형을 위해 실물경제 및 외화자금시장 안정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외환 유입 관련 규제들을 완화하는 것”이라면서 “다만 견조한 대외건전성을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