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고양시에 거주하는 김모씨(22세)는 얼마 전 지인이 주선한 소개팅에서 한 여성을 만났지만 원하던 관계로 발전시키지 못했다. 주선자를 통해 전해 들은 소개팅 실패 원인은 부족한 머리숱 때문이었다.
김씨는 “머리 때문에 두피가 보일까봐 모자를 자주 착용한다”며 “머리숱이 없으면 소개팅 상대로 꺼리는데 이러다 누군가를 제대로 사귀어보지도 못하면 어떡하나 걱정된다”고 털어놨다.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이모씨(29세)도 앞머리가 올라가면서 전체적으로 두상이 넓어지는 탈모 증상을 앓고 있다. 거울을 볼 때마다 우울해지거나 심할 땐 사람들 앞에 나서기 두려워져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씨는 “언제부턴가 머리카락이 가늘어지는 느낌을 받았는데 아니겠지하고 버텼다”면서 “머리숱이 휑해지는 속도가 빨라지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 국내 탈모인구 1000만명…젊은 탈모 환자 증가 추세
김씨와 이씨처럼 탈모로 고민하는 남성들의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
21일 보건의료빅테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탈모증으로 진단받은 환자 수는 24만7382명으로, 지난 2018년 22만5000명에서 연평균 2.5%씩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병원을 방문해 탈모증을 진단받지 않은 이른바 ‘샤이 탈모인’까지 포함하면 국내 탈모 인구는 10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탈모의 주요 원인은 유전과 남성호르몬이다.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모낭에 도달하면 5-알파 환원효소와 만나 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DHT)으로 변하는데, DHT는 모낭을 약하게 만든다.
최근에는 스트레스나 다이어트, 과로, 음주, 흡연 등 잘못된 생활습관의 영향도 받는다. 여기에 탈모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며 병원을 찾는 젊은층이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2022년 기준 탈모 환자 중 20~30대 비율은 40.1%를 차지했다.
명지병원 모발센터에도 젊은 환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3일 모발센터에서 만난 황성주 센터장은 “최근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을 진료했고 22세 환자에게 모발 이식 수술을 진행한 케이스도 있다”며 “지난 9월 센터 운영을 시작한 지 3개월여 만에 모발이식 수술 건수가 2배 늘어 몸살이 날 정도로 바쁘다”고 말했다.
◆ “부작용 발생 적어”…효과·선호도 고려해 약 처방
탈모는 M자형 탈모, U자형 탈모, V자형 탈모, 혼합형 탈모 등 종류가 각양각색이다. 그 중 앞머리 모발선이 M자 형태로 변하면서 점차 뒤쪽으로 후퇴하는 M자형 탈모는 국내 탈모인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20대 초중반 탈모 환자에게서 대체로 보이는 징후이기도 하다.
국내에서 승인받은 주요 경구형 탈모 치료제로는 두타스테리드와 피나스테리드가 있다. 두타스테리드는 5-알파 환원효소 1형과 2형을 모두 차단한다. M자형 등 전두부 탈모 치료에 효과가 있다. 한 달 치 약값도 피나스테리드보다 2만7000원가량 저렴해 젊은층이나 앞탈모 치료를 원하는 환자들이 많이 찾는다. 두타스테리드 성분 약으로는 GSK의 ‘아보다트’가 있다.
피나스테리드는 5-알파 환원효소 2형을 차단하는데, 앞머리 탈모보다 뒷머리 탈모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주로 섭취한다. 한 달 치 약값은 5만7000원선이다. MSD의 ‘프로페시아’가 대표적인 약이다.
피나스테리드를 복용하다 효과가 미미하다고 느껴지면 의사와 상담을 통해 두타스테리드 계열의 약물로 변경하는 환자들도 있다. 환자의 탈모 진행 상황과 치료 효과, 약값, 선호도 등을 고려해 처방이 진행된다.
황 센터장은 두 약제 모두 부작용 발생을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조언한다. 그는 “대표적인 부작용으로 알려진 성 기능 관련 부작용은 전체 환자의 1~2%에서 발생할 정도로 적은 수준”이라며 “10~20년 넘게 장기 복용해도 이상 증상을 호소하지 않는 환자가 대다수이기 때문에 부작용이 무서워서 치료를 미룰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 “치료는 골든타임 중요…이식이 최종 종착점 아냐”
모발이 확연히 가늘어진 느낌이 들거나 하루에 모발이 100개 이상 빠지는 등의 신호가 있다면 탈모를 의심할 수 있다. 그런데 혼자 민간요법에 의지해 거금을 내고 두피 클리닉에 다닌 뒤 효과가 없다며 뒤늦게 병원을 찾는 환자들도 많다.
황 센터장은 “두피 클리닉 같은 관리는 비용 대비 효과성 측면에서 추천하지 않는다. 약물치료 효과가 100점 만점에 80점이라면, 바르는 약은 20~30점, 두피 관리는 5점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며 “탈모가 의심된다면 전문 의료기관을 방문해 정확한 진단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탈모 진행 정도에 따른 치료 전략은 크게 약물치료, 모발이식, 두피문신 등이 있다. 탈모 진행이 심하지 않고 머리카락이 남아있는 환자에게는 약물로 모발을 굵게 만드는 치료법이 추천된다.
반면, 탈모가 상당히 진행돼 수술로 확연한 차이를 낼 수 있을 때 모발이식이 권유된다. 모발이식은 뒷머리 모발을 전두부나 정수리에 이식하는 수술로, 채취할 수 있는 모발 개수에 따라 가능한 수술 횟수나 전략이 달라진다.
그러나 모발이식이 탈모치료의 종착역은 아니다. 황 센터장은 “모발이식 후 치료제 복용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있는데 약을 꾸준히 먹지 않으면 기존 모발의 탈락이 계속 진행돼 치료제 복용을 소홀히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황 센터장은 지난 2006년 세계모발이식학회(ISHRS)에서 ‘백금모낭상’을 받은 모발이식 분야 명의(名醫)다. 그가 개발한 모낭 길이에 따른 모발이식 기술은 모발 생착률을 높이고 부작용 발생은 줄여 모발이식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세밀한 기술이 적용되는 만큼, 원래 모발과 거의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외관상 차이도 줄었다.
황 센터장은 “머리카락이 어느 정도 남아있을 때 빠르게 탈모치료를 시작하는 게 가장 중요하고, 모발이식이 필요한 경우 한시라도 빨리 진행하는 것이 효과나 만족도 측면에서도 훨씬 낫다”면서 “지성 두피일 경우 하루에 두 번 머리를 감고, 개인 두피 특성에 맞는 샴푸를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