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한 장만큼 남은 2024년은 언어폭력이 온 나라를 휩쓰는 거친 해였다. 공적·사적 장소를 막론하고 폭력적 언어가 활보했다. 특히 무한 권력욕에 사로잡힌 정치꾼들의 말 폭력으로 인해 우리 공동체가 지켜온 말에 대한 예의가 붕괴하는 것을 보며 안타까움, 분노, 무력감이 일었다. 더욱이 사회에서 소외된 돈 없고 힘없는 사람들에 대한 언어폭력은 노출도 사회적 문제화도 잘 안 된다는 점에서 가슴 아팠다.
“죽어서도 다음 생이 있다면 다음 생에서도 사랑한다. 내 새끼 사랑한다.” 지난 9월에 언어폭력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은 35살 여성이 남긴 유언이다. 여섯 살 딸을 스스로 영원히 떠나는 애절함을 뉘라 알겠는가. 고인은 6년 전 이혼하고 양육비 한 푼 받지 못하면서 유치원생 어린 딸과 뇌졸중과 심장병을 앓는 아버지를 부양하며 억척스럽게 살았다. “이혼 6년 만에 처음으로 사 입어 본 7900원짜리 티셔츠 한 장에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르는” 게 그이의 형편이었다. 지난 8월 급전 90만원이 필요해 연이율 수천%대에 돈을 빌렸고, 약속한 9월 초에 돈을 갚지 못하자 이자만 1000만원 넘게 늘어났다.
사채업자는 ‘백지 차용증’을 든 고인의 사진을 뿌리고, 고인과 지인들에게 악랄한 욕설, 협박의 불법 독촉문자를 시도 때도 없이 보냈다. “낙태하려고 돈 빌려 놓고 갚지 않아” “한 시간 안에 안 갚으면 한 시간에 10만원씩 이자가 붙는다” “중국 보이스피싱 업체에 지인들의 정보를 팔아넘긴다” “유치원 교사에게 전화하여 아이를 보러 가겠다”고 했다. 고인이 사망한 뒤에는 유족들에게 “잘 죽었다” “그 여자 곁으로 너희도 다 보내주겠다”는 믿기 어려운 악랄한 문자를 보냈다.
폭력 언어는 욕설, 협박, 거짓말, 저주의 말로 상대의 자존심을 공격하여 상처를 내고, 스스로 자신을 비하하고 부정적으로 느끼게 하는 행위이다(‘Verbal Aggressiveness’, Infante & Wigley). 폄하, 모욕, 악담, 욕설, 조롱, 저주, 막말, 상스런 말로 상대를 물리적·심리적·정서적·정신적·경제적·성적으로 압박하여 통제하고 지배하는 행위이다.
우리 공동체가 언어폭력으로 골병이 들고 있다. 진단과 치료를 더 이상 미적이면 건강을 되찾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극심한 가난과 소외로 이미 존재가 파괴되고 있는 이들이 사각지대에서 언어폭력에 무방비로 당하고, 생명마저 포기하는 일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언어폭력은 방치해도 될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함께 단호하게 대처해야 할 사회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