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에서 비롯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이 한창인 와중에 돌연 현수막 논쟁이 벌어졌다. 국민의힘 정연욱 의원이 자신의 지역구에 달려던 현수막 문구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문제 삼으면서다.
현수막에 담긴 ‘그래도 이재명은 안 됩니다’란 문구는 대선 출마가 유력시되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겨냥한 낙선운동 성격을 담고 있어 게시를 불허했다는 것이 선관위 입장이다. 여권은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 절차가 시작되기도 전에 선관위가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둔 편파적 판단을 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22일 정치권에 따르면 현수막 논쟁의 진앙은 정 의원의 지역구인 부산 수영구다. 조국혁신당은 지난 11일부터 이 지역에 ‘내란수괴 윤석열 탄핵 불참 정연욱도 내란공범이다’라고 적은 현수막을 걸었다. 정 의원은 맞불을 놓되 화살을 민주당에 겨누기로 하고 논란이 된 ‘안 됩니다’ 현수막을 걸기로 했다. 문구를 완성한 정 의원 측은 국회에 파견된 선관위 협력관에게 사용 가능 여부를 문의했고, 선관위는 담당 부서인 해석과 심의를 거쳐 최종 불허 통보를 한 것으로 파악됐다.
선관위는 ‘안 됩니다’ 문구를 사용할 경우 공직선거법 254조 선거운동기간위반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 조항은 선거운동 기간 전에 선거법이 허용하는 범위 밖에서 각종 인쇄물 등 매체를 활용해 선거운동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어기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400만원 이하 벌금형이다. 선관위가 정 의원의 현수막 문구를 사실상 선거운동의 일환으로 본 것으로 분석된다. 선관위 관계자는 “당연히 대선에서 특정인이 적임자가 아니라는 의미로 인식될 수 있는 점을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당은 “선관위가 정치 중립을 위반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정 의원 측은 “문구상 ‘안 됩니다’의 의미를 선관위가 공식 문의한 적이 없다”며 “‘정치를 하면 안 된다’ 등 다의적 의미로 지역민들에게 해석을 맡긴 것인데 선관위는 ‘조기 대선에 나가면 안 된다’로 해석해 정치적 판단을 했다”고 했다. 국민의힘 권성동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탄핵 심판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는데 선관위가 무슨 권한으로 탄핵이 인용돼 조기 대선을 전제해 결정했나”라며 “선관위가 이 대표를 위해 사전 선거운동을 하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서지영 원내대변인도 “선관위가 이 대표를 민주당 후보로 미리 정해준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선관위 판단을 둘러싼 논란은 처음이 아니다. 2021년 재보궐 선거 땐 TBS가 ‘#1합시다’ 캠페인을 벌였는데, 기호 1번 민주당을 떠올리게 한다는 문제제기가 있었다. 선관위는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반면 ‘내로남불’이란 문구는 민주당을 떠올리게 한다며 쓰지 못하게 했다. 22대 총선을 앞두고 윤 대통령이 각 지역을 돌며 민생토론회를 열자 야권과 시민사회로부터 사전 선거운동이란 지적이 나왔는데 이는 문제 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