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이브 전날인 23일 제주 성산포항. 동도 안 튼 새벽 5시쯤 밤새 조업을 마친 어선들이 하나둘씩 입항하면서 어둠 속의 항구는 아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어선들이 항구 부두에 정박하자마자 선원들은 반짝반짝 빛나는 은갈치를 비롯해 다양한 수산물을 뭍으로 내렸다. 어류별로 분류돼 아이스 박스에 담긴 수산물들은 곧바로 위판장으로 옮겨졌다. 위판장에는 이날 제주 앞바다에서 어획한 은갈치, 옥돔, 고등어, 백조기 등이 차례로 늘어섰다. 나무상자 개당 수산물 중량은 10kg 기준. 성산포항에는 하루 평균 1000~1500kg의 각종 수산물이 들어온다.
오전 5시50분쯤 위판장 안에는 고유 번호가 새겨진 빨간 모자를 쓴 이들이 수산물 상태를 확인하며 모여 들었다. 이들은 어선에서 갓 내린 수산물을 도매상으로 넘기는 중간 도매인들이다. 성산포항 기준으로 등록된 법정 중도매인은 35명으로 이들만 경매에 참여할 수 있다. 제주에서 잡힌 수산물들은 대부분 중도매인의 손을 거쳐 전국 각지로 팔려나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전 6시. “삑삐비비빅-” 우렁차게 울려퍼지는 경매사의 호루라기 소리를 시작으로 수산물 경매가 시작됐다. 제주 특산물인 은갈치 경매는 잡어(갈치 제외 수산물) 경매를 마치고 나서 6시 40분쯤 시작했다. 갈치는 사이즈별로 10kg씩 구분해 경매를 진행한다. 크기는 총 7단계로 나뉜다. 제일 큰 사이즈인 왕특대는 10kg당 8∼9 마리이고, 제일 작은 사이즈인 알치는 60마리 전후다. 예를 들어 경매사가 “45미 3상자”라고 하면 10kg에 45마리가 들어가 있는 소(小)자 크기의 갈치 30kg를 경매에 붙인다는 의미다.
경매사가 힘차게 호루라기를 불자 중도매인들은 손 팻말에 가격을 적은 후 경매사에게 보여줬다. 그 중 최고가를 적은 중도매인이 낙찰을 받게 된다. 경매 과정은 채 10초도 걸리지 않을 정도로 순식간에 이뤄진다.
30년 경력의 해원수산 고명환 대표(62)는 “갈치가 같아 보여도 다 다르다”며 “어체에 손상이 없고 은빛이 맑은 것을 골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날 고대표가 경매 받은 갈치는 150상자(1500kg)다.
고 대표가 낙찰 받은 갈치는 곧바로 작업장으로 옮겨졌다. 갈치가 도착하자마자 직원들은 바닷물로 한 번 세척 한 뒤 스치로폼 상자에 담았다. 이어 갈치의 스크래치 방지와 신선도 유지를 위해 갈치에 비닐을 덮고 얼음을 넉넉하게 올렸다. 이 작업이 끝나면 제주 은갈치는 택배에 실려 전국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 거래처에 납품된다.
기자가 이날 경매 과정을 취재한 결과, 조업을 마친 수산물이 경매를 거쳐 포장까지 끝내는 전 과정이 채 1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고 대표는 “제주 앞바다에서 어획한 수산물을 다음날 전국 홈플러스와 현대그린푸드 등을 통해 맛볼 수 있도록 신선도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고 대표의 주요 거래처는 대형 유통업체 이지만 소비자에게 직거래로 판매하기도 한다. 그는 “갈치는 보통경매로 한 상자(10kg 기준)에 평균 40만원에 구매한다. 마리당 (800g∼1kg) 당 4만원 꼴”이라며 “하지만 경매가에서 법정 수수료만 더 해서 판매하기 때문에 (직거래 하면) 백화점에 비해 절반가로 구매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