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기의시대정신] 악이 승리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

한순간 곤두박질칠 수 있는 인생
나의 평온은 과연 당연한 것일까
혼돈 속에 맞이하는 크리스마스
선한 자들의 침묵은 가장 큰 비극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와 더불어 올 한 해 출판계를 뒤흔든 또 한 명의 작가가 있다. 단 네 권의 책으로 유수의 문학상을 휩쓸며 거장의 반열에 오른 클레어 키건(Claire Keegan)이다. 문학의 나라 아일랜드 출신이다. 지난해 국내에 처음 번역된 후 조용히 입소문을 타다가 올 상반기 가장 많이 팔린 소설가로 꼽히며 반향을 일으켰다. 대표작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연말을 맞아 yes24, 알라딘, 밀리의 서재 등이 일제히 뽑은 ‘올해의 책’이다.

소설은 130페이지 분량이다. 단행본으로 나온 게 무색할 정도로 간결하다. 서사는 단순하고 결말도 어렵지 않다. 하지만 많은 독자가 수없이 되풀이해 읽었음을 고백할 만큼 여운은 묵직하다. 독자 중에는 아일랜드 출신 배우 킬리언 머피도 있었다. 그가 제작과 주연을 맡은 동명의 영화가 12월11일 개봉했다. 활자들 사이 부유하던 잿빛 풍경이 궁금해 극장을 찾았다. 영화의 배경은 1980년대 아일랜드, 크리스마스 무렵의 며칠이다.

 

김동기 국가미래연구원 연구위원·전 KBS PD

영화에는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모든 것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선물을 준비하는 부부, 가족이 함께 만드는 케이크,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인 트리 점등식과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합창하는 소녀들, 수녀님이 전하는 크리스마스 카드와 마을을 하얗게 덮는 함박눈까지. 그러나 이 모든 크리스마스 상징들은 주인공 빌 펄롱의 시선을 통과하며 알 수 없는 불안을 증폭시킬 뿐이다.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마을이 숨기고 있는 짙은 어둠을 만나게 된다.



펄롱은 석탄 판매상이다. 동네 꼬마에게 쥐여 준 동전 몇 개 때문에 아내에게 핀잔을 들을 정도로 넉넉지 못하지만 다섯 딸을 교육시키며 평화롭게 살고 있다. 그러나 그의 안온한 일상은 석탄 배달 중 수녀원에서 맞닥뜨린 한 소녀로 인해 균열을 맞는다. 탈출시켜 달라며 펄롱에게 매달리는 소녀, 이 어린 임산부의 몸에는 학대의 흔적이 역력하다.

보수적인 가톨릭 질서가 지배하는 마을, 학교와 병원을 운영하며 마을의 모든 대소사에 관여하는 가톨릭 교회는 거대한 권력 그 자체였다. 수녀원은 타락한 여성의 갱생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소녀들을 가두고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었다. 참혹한 인권 유린을 곁에 두고도 마을 전체가 공고히 침묵하고 있는 상황. 소녀를 두고 온 뒤 번민하는 펄롱에게 아내가 말한다. “살아가려면 모른 체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고.

수녀원의 실체는 놀랍게도 역사적 사실이다. ‘회개한 매춘부’를 의미하는 성녀 막달레나에서 이름을 따, 막달레나 수용소 혹은 막달레나 세탁소라 불렸다. 18세기 중반 잉글랜드를 시작으로 스코틀랜드, 미국, 캐나다 등 영미권 전역으로 퍼졌다. 미혼모, 미혼모의 딸, 성범죄 피해 여성, 혹은 타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 등을 들어 무고한 여성들을 감금하고 학대했다. 이들은 더러운 죄를 씻어야 한다며 세탁 일을 강요받았고, 강제입양으로 아기를 빼앗겼다. 특히 아일랜드의 막달레나 수용소는 가장 오랜 기간 유지되며 수만명의 피해자를 낳았다. 한 수용소의 터에서 시신 150여구가 암매장된 집단묘지가 발견되기도 했다. 아일랜드의 막달레나 수용소는 1996년에서야 마침내 폐쇄됐다.

영화 내내 펄롱은 석탄으로 더러워진 손을 강박적으로 씻는다. 눈빛은 위태롭게 흔들린다. 그는 자신의 평온한 삶이 그저 ‘운이 좋은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실업수당 줄이 길게 늘어서고 배곯은 아이가 길고양이 우유 그릇을 핥는 혹독한 시절, 누구든 한순간 곤두박질칠 수 있음을. 영화는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풍경 틈으로 내내 불편한 진실을 파고든다. 나의 평온은 당연한 것인가. 저들의 불행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인가.

2024년 한국의 여름은 지독하리만큼 더웠다. 도로 중앙분리대가 녹아내릴 지경의 폭염에 많은 야외노동자가 쓰러졌다. 봄부터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는 수많은 환자를 겹겹의 고통으로 몰아갔다. 가을까지 이어진 폭우에 어떤 이들의 일상은 완전히 무너졌다. 때 이른 폭설과 한파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차디찬 새벽을 보내고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느닷없이 닥친 비상계엄 사태와 정치적 혼란 뒤로 잊혀진 민생의 후유증은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한 곳부터 파고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스마스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비겁한 안락과 불안한 용기 사이에서 주저하던 펄롱은 끝내 소녀의 손을 굳게 붙잡고 수녀원을 떠난다. 지친 소녀를 업고 부축하며 어둡고 굽이진 길을 지나 마침내 노란 불빛이 가득한 집으로 들어서며 암전. 라벨의 무거운 선율이 흐르는 검은 스크린을 바라보며 한동안 많은 관객이 자리를 뜨지 못했다. 가장 어두운 크리스마스 영화에서 사금처럼 반짝이는 ‘인간의 선의’를 건져냈다. 그 빛이 혼돈 속에 크리스마스를 맞고 있는 우리 사회에도 깃들어야 하기에. 문장 하나를 떠올리며 무거운 코트를 집어든다. “악이 승리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선한 자들의 침묵이다.” 영국의 정치 철학자 에드먼드 버크의 말이다.

 

김동기 국가미래연구원 연구위원·전 KBS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