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기 위해 트랙터 10여대까지 동원한 시위가 그제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관저 근처에서 벌어졌다. 트랙터 시위대는 서초구 남태령에서 동작대교, 반포대교 등을 거쳐 서울지하철 6호선 한강진역 주변으로 이동해 집회에 참석했다. 시민 6000여명은 트랙터가 도착하자 “국민이 승리했다”, “윤석열을 구속하라”며 환영했다고 한다. 아무리 계엄과 탄핵의 어수선한 정국이라고 하더라도 트랙터를 동원한 시위가 서울 도심에서 버젓이 벌어진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회원들은 윤 대통령 체포와 구속을 주장하며 16일 경남과 전남에서 트랙터 30여대와 화물차 50여대를 끌고 상경에 나섰다. 21일 남태령에서 시민 교통불편을 이유로 들어 경찰이 차벽으로 막자 대치했다. ‘전봉준투쟁단’이라고 이름 붙인 이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시위 상황을 생중계하면서 트랙터로 경찰 버스를 들어 올리려고 하기도 했다. 시위를 지지하는 시민이 현장으로 몰려가면서 대치 상황은 그제 오후까지 28시간가량 이어졌다. 신고 범위를 벗어났거나 아예 신고하지 않은 불법 집회다.
12·3 계엄 사태와 관련해 경찰청장과 서울경찰청장이 모두 구속된 상황임을 고려하더라도 공권력 대응은 무기력하기만 했다. 시위대와 현장 시민뿐만 아니라 더불어민주당 의원까지 나서 “헌법에 보장된 집회·결사 자유를 제한한다”고 항의했다. 민주당 김성회·이소영 의원 등은 이호영 경찰청장 직무대행을 찾아가 차벽 해제를 촉구하기도 했다. 경찰은 대치 끝에 결국 일부 트랙터의 행진을 허용하고 말았다. 경찰로서는 하염없이 대치 상황이 이어졌다가는 월요일 출근길 대란이 불가피하다는 현실적 고민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계엄 심판이라는 큰 목소리 앞에서 작은 불법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나쁜 사례를 남겼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시위대 측에서는 현장 경찰 책임자를 직권남용으로 고발하겠다는 말까지 나온다니 이런 적반하장도 없다.
시민이 나서 계엄을 막고 대통령 탄핵을 끌어낸 모습에 세계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외신들은 연일 여의도 국회 앞을 가득 메운 시위대가 사고 없이 질서정연하게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앞다퉈 보도했다. MZ세대가 K팝 응원봉을 들고 로제의 ‘아파트’를 부르면서 즐기는 모습은 ‘K시위’로 내세울 만하다. 트랙터 10여대를 몰고 도심을 누비는 시위는 이런 성숙한 시위 문화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