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철강재 절반 중국산… 헐값 공세에 반덤핑 관세 맞불 [심층기획-‘메이드 인 차이나’의 공세]

<2회> 중국산 ‘공급 과잉’ 한국 내수는 궤멸 위기

2023년 생산량 10억t… 2~4위 합친 양의 세배
8380만t 잉여 생산… 저가 공세로 직격탄
美·EU 반덤핑관세 부과… 인도도 추진중
관세 인상 등 2024년만 28건 무역구제조치

韓, 피해조사 나서… 2025년 2월쯤 부과 전망
2기 트럼프 정부선 관세 대상국 지정 우려
석유화학업계도 對中 수출감소 등 절망적
에틸렌 등 저가 수출 실적 악화로 이어져

중국은 2015년부터 ‘중국제조 2025’ 계획을 추진해 오고 있다. 이 계획은 내년 제조강국에 진입하고, 2045년 세계 1위 제조업 국가로 도약하겠다는 중국 정부의 장기 프로젝트다.

중국은 이를 위해 산업의 기반이 되는 철강과 석유화학 산업에 전폭적인 투자를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최근 중국 내수경기가 침체하면서 과잉생산된 철강과 석유화학제품이 남아돌게 됐고, 이를 저가에 수출하면서 이웃국가의 산업 근간을 흔들게 됐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중국산 저가 철강, 전 세계 산업 근간 파괴 우려



23일 세계철강협회(WSA) 등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철강 생산량은 10억1900만t이다. 이는 2위인 인도(1억4000만t), 3위 일본(8700만t), 4위 미국(8000만t)의 생산량을 모두 합친 것보다 세 배 이상 많다. 중국 철강의 글로벌 생산 비중도 2000년 15%에서 2020년 57%로 정점을 찍었다가, 지난해 54%를 기록했다.

중국은 생산된 대부분의 철강을 내수용으로 사용해 왔다. 하지만 최근 중국 내수와 건설경기 침체로 철강 소비량은 2021년 9억9380만t에서 지난해 9만3550t으로 감소했다.

 

지난해 중국의 철강 공급과잉으로 약 8380만t 규모의 잉여 생산분이 발생했다. 올해에는 1억1000만t으로 확대될 거라는 전망이다. 중국의 입장에선 전체의 10%도 되지 않은 잉여 생산분을 수출하지만, ‘덤핑’에 가까운 저가로 한 국가의 전체 철강 생산량보다 더 많은 양을 수출하면서 글로벌 철강 생태계 교란을 일으킨다.

한국철강협회 자료를 보면 한국의 중국산 후판 수입 물량은 2021년 47만t에서 지난해 131만t으로 2년 사이 3배 가까이 늘었다. 올해 1~10월 중국산 철강재 수입량은 753만5041t으로, 2022년(675만5759t)의 수입량을 이미 넘어섰다. 중국산 철강이 국내 철강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국내 철강기업이 직격탄으로 맞았다. 포스코가 올해 포항제철소 1제강공장과 1선재공장 폐쇄 결정을 내렸고, 인근 현대제철마저 포항 2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중국산 철강 ‘반덤핑 관세’…한국 철강 자유롭나

저가의 중국 철강은 글로벌 조선업계나 건설분야에서 물가 상승 억제 작용을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산업의 쌀’이라는 철강 특성상 외부에 의존하면 한 나라의 산업 근간이 파괴될 수 있다.

미국이나 유럽연합(EU) 등 선진국은 물론 상당수의 국가가 중국의 ‘철강 밀어내기’에 대해 반덤핑관세로 대응하고 있다. 멕시코와 칠레, 브라질, 튀르키예, 인도네시아 등은 자국 기업 보호를 위해 중국산 철강 수입에 대한 관세를 대폭 인상하는 등 올해에만 총 28건의 중국산 철강에 대한 무역구제조치가 단행됐다. 이는 지난 3년 동안 8건에 그친 것과 크게 대비된다. 인도 역시 저가로 수입되는 중국산 철강제품에 최대 25%의 ‘세이프가드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지난 7월 현대제철이 중국산 철강의 덤핑 행위를 제소하면서 산업통상자원부가 10월부터 철강 산업 피해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내년 1월쯤 예비 판정이 나오게 되면 2월 중에 잠정 반덤핑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

다만 한국 철강도 이웃국가의 관세 장벽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한국은 철강 최대 교역국 중 하나인 미국으로부터 25% 관세 대상국으로 지정될 뻔했으나 쿼터제로 규제가 완화됐다. 이 때문에 미국으로 수출하는 한국 철강은 263만t 무관세를 적용받고 있다.

하지만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현재 쿼터제 물량이 줄고, 다시 관세 대상국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있다.

 

◆중국산 석유화학 제품에 국내 업계는 ‘절망적’

석유화학업계도 대(對)중국 수출 감소와 고환율로 절망적인 상황이다.

올해 3분기 기준 국내 석유화학 빅4(LG화학 화학부문·롯데케미칼·한화솔루션 케미칼부문·금호석유화학)의 누적 영업손실은 5012억원에 달한다. 석유화학 기업은 2021년만 해도 한 해 9조원 넘게 벌어들이는 등 모두 ‘조 단위’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하지만 2022년부터 하나둘 적자로 돌아서면서 3년 만에 무려 10조원의 영업이익이 증발했다.

 

범용품 중심의 수출에 의존해 왔으나 중국이 석화 자급을 목표로 설비를 대규모로 증설하면서 경쟁력을 잃었다. 최근 중국 내수경기 침체로 과잉 생산된 에틸렌 등을 저가로 수출하면서 국내 석화업계 실적 악화로 이어졌다.

 

한국무역협회의 ‘중국 공급과잉에 대한 주요국 대응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에틸렌 글로벌 생산능력은 229메트릭톤(MT)이지만, 예상 수요는 188MT에 불과하다. 중국의 에틸렌 생산능력은 2022년 45MT로 미국(43MT)을 제치고 에틸렌 생산능력 1위 국가로 부상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게다가 최근 원·달러 환율이 1450원선에 도달하면서, 원료를 주로 수입하는 석유화학업계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석유화학 분야는 다른 산업보다 특히 중국 리스크를 크게 받고 있다”며 “특히 롯데케미칼의 경우 에틸렌을 생산하는 기초화학 부문 의존도가 높은 만큼 더 실적이 악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