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보고 ‘귀엽다’, ‘기특하다’고 하지 말아달라. 우리도 엄연한 정치 참여 주체다.”
22일 서울 서초구 남태령고개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퇴진 촉구 집회에서 연단에 올라 10대라고 밝힌 한 여학생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영하권의 강추위에도 이날 집회에는 K팝 가수의 응원봉을 든 10대 청소년들의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경기 수원에서 친구와 함께 온 이유진(16)양은 “12·3 계엄사태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보고 화가 나서 집에만 있을 수 없었다”며 “청소년들도 잘못된 건 바로잡을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논란이 커지자 해당 고교는 19일 입장을 바꿨다. 학교장은 “서울시교육청 지침을 상세히 살펴보니 2022년 4월에 개정된 지침이 내려왔는데 그때 제대로 고치지 못했다”며 “현재는 규정이 잘못돼 있어서 완전히 삭제하고 다시 보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학교 측은 학내 의견 수렴과 학교운영위원회 등을 거쳐 학교생활규칙 개정을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마무리하겠다고 덧붙였다.
2020년 선거연령이 만 18세로 하향 조정된 후 서울시교육청은 각 학교에 정치활동 제한 학칙의 개정을 요청했지만, 상당수 학교가 ‘정치관여행위 금지’ 조항은 그대로 둔 채 ‘공직선거참여 제외’라는 단서만 추가하는 데 그쳤다.
교육계에선 청소년들의 정치의식이 성숙했다며 제한을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청소년 인권행동 ‘아수나로’의 수영 활동가는 2022년부터 정당 가입 연령이 만 16세로 낮아졌음에도 학교가 투표 참여만을 허용하는 방식으로 청소년들의 정치 참여를 제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법조계에서는 청소년의 정치 참여에 신중한 입장을 보여왔다. 법원은 여러 판결을 통해 청소년의 자율적 판단능력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2020년 부산지방법원 서부지원은 만 16세 청소년의 선거운동 참여 사례에 대해 “정치적 판단능력이 부족한 사람의 선거운동을 제한하여 선거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공직선거법의 입법목적을 훼손했다”며 벌금을 부과했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결국은 학교에서 정치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냐의 문제”라며 “청소년들이 헌정 사상 유례없는 12·3 계엄사태에 대해 목소리 내는 건 막을 필요가 없지만, 특정한 입장을 가진 교사나 성인들에 의해서 이런 목소리가 유도되는 건 안 된다”고 경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