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의 역할이 북한 방어에서 중국 방어로 옮겨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인사가 도널드 트럼프 2기 국방부 정책차관에 지명됐다. 정책차관에 지명된 엘브리지 콜비는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국방부 전략 및 전력 개발 담당 부차관보를 지낸 인물로 한국 자체 핵무장 가능성을 인정하며, 주한미군의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향후 주한미군의 역할이 북한 방어에서 중국 방어로 초점을 옮겨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 해외 미군의 역할을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전통적인 동맹론에서 벗어난 사고를 하는 인물들이 늘어나면서 주한미군의 역할 조정도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당선인은 22일(현지시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국방부 부장관에 사모펀드 서버러스 캐피털의 공동 창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스티븐 파인버그를 지명했다고 발표하고, 연이어 콜비의 국방부 정책차관 지명 소식을 전했다. 파인버그는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정보자문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인물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콜비에 대해 “미국우선주의 외교 및 국방 정책을 옹호하는 매우 존경받는 인사로 나의 우수한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지명자와 함께 긴밀히 협력해 우리 군사력을 복원하고, 나의 ‘힘을 통한 평화’ 정책을 이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 국방부 정책차관은 동맹과 국방 협력을 담당하며 국무부 군비통제·국제안보 차관과 함께 한·미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의 미국 측 책임자다.
콜비는 트럼프 당선인과 개인적 친분은 많지 않으나 해외 미군 감축, 미국우선주의 등 사상적 동질성이 강하며, 대선 기간 여러 해외 언론을 통해서 트럼프 당선인의 정책을 홍보한 인물이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 여러 언론 인터뷰에서 한반도에 미군이 주둔해야 하나 첫째 목적은 북한보다는 중국에 대한 방어가 돼야 하고, 북한 방어는 한국이 최대한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맥락에서 한국의 자체 핵무장 가능성을 열어뒀으며, 북한의 비핵화가 비현실적이고 미국의 대북 정책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사거리 제한 등 군비통제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구체적으로 얼마가 될지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방위비분담금 인상도 지지하는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트럼프 2기 내각 외교안보 진용에서 주한미군을 콕 집어 역할 조정을 직접적, 공개적으로 언급한 인사는 현재까지로는 콜비(사진)가 유일하다. 하지만 허버트 맥매스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전통적인 동맹론자·대북강경론자들이 있었던 트럼프 행정부 1기와 다르게 트럼프 당선인의 미국우선주의와 사상적 결을 같이하는 인사들이 내각에 늘어나면서 주한미군의 역할 역시 재검토될 가능성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트럼프 당선인의 국방정책을 뒷받침하게 될 양대 축인 마이클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헤그세스 지명자는 효율적인 미군을 강조하면서 해외 미군의 감축을 시사해왔다. 헤그세스 지명자는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폭스뉴스에 출연해 “미국 국민이 (블라디미르) 푸틴(러시아 대통령)에 맞서 싸우기 위해 우리 아들들을 지구 반대편으로 보내는 것을 진정으로 지지할까”라고 반문하며 “엘리트들은 우리가 그렇게 하기를 원할 것 같지만 미국 국민은 아마도 그렇지 않다고 말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플로리다 하원의원인 왈츠 지명자 역시 하원 외교위 활동 당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비용 분담을 늘리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국방 당국자들에게 꾸준히 강조하면서 ‘군사 분담 재조정’을 자신의 의제로 삼았던 바 있다.
이에 트럼프 2기가 시작하면 주한미군 조정론이 부상하고 역할과 규모 등을 놓고 논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다뤄질 주제가 콜비의 주장처럼 주한미군의 역할이 중국 방어에 더 초점이 맞춰지는 것이 될 수 있다.
한 예로 트럼프 당선인 측 외교안보 참모들이 올해 초 저술했으며 왈츠 지명자, 키스 켈로그 우크라이나·러시아 특사 지명자 등도 저술에 기여한 책 ‘미국 국가 안보에 대한 미국우선주의 접근법’에서 스티븐 예이츠 전 자유아시아방송(RFA) 회장, 애덤 새빗 미국우선주의연구소(AFPI) 중국 국장은 주한미군의 역할을 중국과 관련지어 언급했다. 이들은 중국 관련 장에서 “약 3만명의 미군이 엄청난 수의 한국군과 함께 북한을 막기 위해 주둔하고 있으며, 이 군사력은 중국을 억제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주한미군의 역할은 북한과 함께 광범위한 의미에서 중국을 방어하는 것이었지만,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이것이 좀 더 노골화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 1기인 2016∼2020년 주한미군 선임분석관으로 일하기도 했던 시드니 사일러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선임고문은 최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당선인이 주한미군 감축 혹은 역할 재조정을 검토할 것이라며 “변화를 받아들이기 너무 어렵다는 것을 알지만, 과거 주한미군의 역사를 보면 조정이 있었다”고 언급했다. 그는 “지금 고려돼야 할 것은 향후 5∼10년 내에 중국과 전쟁을 치르거나 대만해협을 둘러싼 군사 행동이 있을 가능성, 그런 시나리오에서 주한미군의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입장에서 주한미군의 역할이 중국 방어에 좀 더 다가가게 될 것임을 시사하는 언급이다. 주한미군뿐만 아니라 한·미·일 3국 협력의 우선 역할도 중국 방어라는 인식이 이미 높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날 또 트럼프 1기 국방부와 백악관 예산관리실(OMB) 근무 경험이 있는 마이클 더피를 국방부 획득 담당 차관에 임명했다. 공유차량 기업 우버 임원 출신인 에밀 마이클은 국방부 연구공학 담당 차관으로 지명됐다. 이날 트럼프 당선인은 켄 호워리 전 스웨덴 대사를 덴마크 대사로 발탁했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국가 안보와 전 세계 자유를 위해 미국은 그린란드의 소유권과 지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해 또다시 논란을 불렀다. 트럼프 당선인은 2019년 북극해에 있는 덴마크의 자치령 그린란드를 일방적으로 매입하겠다고 해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