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돌고 돌아 친윤(친윤석열)·검사 출신 투톱 체제를 갖추게 됐다. ‘원조 친윤’ 권성동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사법연수원 17기)가 윤석열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 2년 선배이자 지난 대선을 진두지휘했던 5선 권영세 의원(연수원 15기)을 비상대책위원장 후보로 24일 지명하면서다. 한동훈 전 대표가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직후 사실상 축출된 지 8일 만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 후폭풍과 탄핵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국민의힘이 ‘쇄신’보다 ‘안정’을 택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 대행은 이날 비상의원총회에서 “새로운 비대위는 국정 안정과 당의 화합·변화라는 중책을 맡아야 한다. 어느 때보다 풍부한 경험과 즉시 투입 가능한 전략이 필요하다”며 권 의원을 비대위원장 후보로 지명했다.
그는 권 후보자에 대해 “실력과 통합의 리더십을 인정받아 정부와 당의 핵심 보직을 두루 역임했다”며 “특히 두 차례 대선에서도 상황실장, 사무총장, 선대본부장 등 중요한 역할을 맡으며 결과로 실력을 입증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원내대표로서 정치 혼란이 국민 일상의 피해가 되지 않도록 신임 비대위원장과 함께 책임 정치에 매진하겠다”며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만드는 심정으로 임하겠다”고 말했다.
이어진 비공개 의총 참석자들은 권 대행의 인선안을 추인했다. 권 대행은 “의원들이 전폭적으로 제 결정을 신뢰해 줬다”며 “별다른 말은 없었다”고 전했다.
권 후보자는 의총 후 기자들과 만나 당 화합·안정·쇄신을 비대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그러면서도 “당이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당을 바꿀 수 있겠나”라며 안정을 강조했다. 비대위가 조기대선 준비위 성격 아니냐는 질문에는 “아직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대선을 생각할 때는 아니다”라며 “당이 국민 신뢰를 받는 정당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무슨 일을 할지 고민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26일 상임전국위원회, 30일 전국위원회 의결을 거쳐 비대위원장으로 공식 취임하게 된다. 2020년 9월 국민의힘 창당 후 여섯 번째 비대위 체제다.
앞서 국민의힘 의원들은 선수별로 의견을 취합한 결과 원내 경험이 풍부한 다선 의원에게 비대위원장을 맡겨야 한다는 쪽에 무게를 실었다. 탄핵 정국 혼란상 수습과 당 재정비가 시급하다는 것이 주된 이유로 꼽혔다. 당대표나 원내대표를 역임한 5선 김기현, 나경원 의원도 후보 물망에 올랐으나, 원만한 성품과 신중한 언행에 당내 반대세력도 적은 권 후보자가 낙점된 것으로 보인다. 대야 ‘전투형’인 권 대행과 합을 맞춰 당을 이끌기에 ‘전략가형’인 권 후보자가 적임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비록 권 후보자가 계파색이 상대적으로 엷다고는 하지만 ‘도로 친윤당’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감수·극복해야 할 지점이다. 그는 대학 시절 윤 대통령을 형사법학회로 이끈 것으로 알려졌고, 검찰 선배에다 윤 대통령 입당 과정에서도 주요한 역할을 했다. 대선 때는 당 총괄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아 윤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이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부위원장, 윤석열정부 초대 통일부 장관을 지냈다. 윤 대통령과 선 긋기가 필요한 시점에 그가 발탁된 것을 두고 의문부호가 따라붙는 이유다.
한 초선 비례대표 의원은 이날 통화에서 “아버지가 감방 가면 면회도 가고 그래야지 버릴 수가 있나. 법과 원칙에 따라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윤 대통령이 우리 대통령”이라며 “의총 녹취록이 언론에 유출될 정도로 분열상이 심한 상황에서 우선은 우리가 견고하게 뭉쳐서 국정을 안정시키고 신뢰감을 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한 영남권 의원은 “이름을 들었을 때 전혀 새로움이 없고 국민이 바라볼 때도 변화, 쇄신 의지가 느껴지지 않지 않느냐”며 “당이 계엄 옹호당 형태로 돌아가는 게 가장 위험한데, 대통령과 함께 했던 분이 앞장서 버리면 일정 부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다른 소장파 의원도 “어쨌든 대통령을 지키려는 마음이 강한 분들이 원내 다수여서 대통령과 단절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다”며 “자칫 당이 헤게모니 싸움터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큰데, 새 비대위원장이 진지한 사죄와 반성을 행동으로 보여 드리고 보수 가치를 중심으로 구체적 정책과 실행 계획도 제시하면서 국민 신뢰를 되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의총에서도 ‘권영세 비대위’는 “윤석열 2기 아바타 체제에 다름 아니다”라는 비판이 제기됐다고 윤종군 원내대변인이 전했다. 그는 “내란 이후인 지난 5일 권 후보자와 권 대행,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윤 대통령과 한남동 관저에서 회동했던 것을 모든 국민이 안다”며 “내란 주모자들이 새로 국민의힘 2기 체제로 들어선 것은 국민에 대한 총공세에 나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저희는 본다”고 꼬집었다.
권 후보자는 안팎의 이런 지적을 의식한 듯 윤 대통령 탈당 관련 질문에 “당내 의견을 모아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지난 13일 한 전 대표가 윤 대통령 제명·출당을 위한 당 중앙윤리위원회를 소집했을 땐 “굉장히 비겁하고 옳지도 않다”며 강하게 반발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