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살며] 한국에서 느끼는 자유

중국 인터넷에는 “한국 여자에 의문을 품다, 한국 여자를 이해하다, 한국 여자가 된다”라는 말이 나돈다. 이 말의 의미는, 처음에는 한국 여성들의 행동을 보고 아주 놀라지만 한국 사회의 배경을 알고는 이들을 이해하게 되고 결국에는 중국의 비슷한 상황을 돌아보며 한국 여성처럼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특히 결혼관에 대해 말할 때 많이 사용된다. 처음에는 인터넷에서 농담처럼 유행하다가 점차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았고 급기야는 중국인, 특히 한국에서 생활하는 중국 여성들의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7년 전, 23살이었던 나는 석사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 한국에 온 이유는 한류의 영향을 받아서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더 가까이 접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자 중국에 계신 부모님은 조금씩 걱정하시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내 ‘인생의 큰일’인 결혼에 대해 걱정하고 결혼을 재촉했다. 사실 부모님의 걱정은 내가 대학교를 졸업했을 때 이미 시작되었다. 어머니께서는 “여자는 석사를 하고, 박사를 하고, 연봉을 많이 받아도 좋은 남자를 만나 빨리 결혼하고 아기를 낳아야 성공하는 거야. 그러니 27살 이전에는 꼭 시집을 가야 해.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너를 결혼 상대로 보지 않을 거야”라고 말씀하셨다.

 

탕자자 이화여대 다문화·상호문화 박사 과정

석사 졸업 후, 나는 한국에서 2년간 직장생활을 했다. 그동안 또래의 한국 여성들이 어떻게 자신을 더 발전시키려고 하는지 많이 봤다. 외모 관리에서부터 자기 계발, 학력 신장, 직장 승진까지 다양하게 말이다. 30살인 팀장은 결혼을 40살까지 미루거나 아예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고, 40살에 연봉 7000만원을 받는 부장은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이때 나는 결혼이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리고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 것은 “자유” 때문이라는 것도 알았다.



2022년 코로나19가 끝난 뒤 나는 중국에 돌아가 사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부모님과 통화할 때면 늘 결혼 이야기가 나왔다. 내 나이가 부모님의 기준에서 보면 시집가기 어려운 나이인 27살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한국에서 느꼈던 “자유”가 그리워졌다. 경력을 쌓을 자유, 학업을 이어갈 자유 그리고 결혼을 스스로 결정할 자유 말이다. 한국에서는 27살이 되었다고 결혼을 재촉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박사 과정을 밟기로 했다. 한국에서 와서 석사 또는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중국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그들 역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 모두가 한편으로는 부모님의 과도한 간섭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결혼 압력을 받지 않고 싶어 했다.

중국에서는 여자 나이 30이면 이미 “늙어서 가치가 떨어진 사람”으로 취급한다. 심지어 직장에 이력서를 내도 관심을 가지고 보는 사람이 별로 없다. 유일한 가치는 결혼해 아이를 낳는 것인데, 나는 이런 현실이 너무 답답하게 여겨진다. 반면, 내가 본 한국 여성들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후에도 다시 박사 과정을 시작하는 사람도 있고, 40대에 기업 고위직에 오른 사람도 있다. 한국에서 다시 생활한 나는 2년 전만큼 불안해하지 않는다. 박사 과정을 통해 더 다양한 지식을 얻고 하고 싶은 연구를 하며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유는 내가 앞으로도 한국에 계속 살고 싶게 만드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탕자자 이화여대 다문화·상호문화 박사 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