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후 따른 농작물 작황부진 소비자 물가 불안으로 현실화 기후 적응형 농업 구조 개선 등 위기대응 더이상 미룰 수 없어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여전히 국내의 정치·경제·사회 모든 측면에서 격동적인 시간이 진행되고 있지만 얼마 남지 않은 한 해를 돌아보며 정리하고 새해의 각오를 새롭게 해야 할 시간이다. 최근 지인의 소개로 한의원에서 체질에 맞는 음식과 그렇지 않은 음식을 진단받았다. 그중 하나로 커피는 좋지 않고 코코아는 괜찮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래서 이제 코코아를 커피 대신으로 마셔야 하는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뉴스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코코아의 국제 가격이 급등하였다는 소식을 들어 깊은(?) 고민에 빠졌다.
전 세계 코코아 생산량의 60%를 차지하는 서아프리카 가나와 코트디부아르에서는 지난해 엘니뇨 등 기상이변과 병충해 확산으로 생산량이 급감해 올해 코코아 선물 가격이 역대 최고가를 경신하였다. ‘기후플레이션’(climateflation)의 대표적 사례이다. ‘기후플레이션’은 기후(Climate)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로,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나 극한의 날씨 탓에 농작물 생산량이 급감하면서 물가가 치솟는 현상을 뜻하는 신조어로 2023년 영국 BBC 시사 프로그램이 기후변화로 인한 고물가를 기획으로 다루면서 이 용어를 사용해 전 세계적으로 쓰이게 됐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2023년 겨울 전국 강수량이 평년 대비 270% 정도 많았고 강수일수 또한 역대급으로 많았다. 이와 같은 이상 기상의 여파로 남부 지방의 과수 농작물이 극심한 피해를 입어 2024년 올해 봄철 과일 물가의 상승률이 역대급으로 높았다. 이상 기상이 농작물 작황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 국내 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대표적인 사례이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기후변화가 국내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이상 기상 발생은 유가, 환율과 함께 농산물 가격의 불확실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유럽 중앙은행도 향후 10년간 이와 같은 추세가 더 악화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현재 세계 곳곳에서 목격되는 이상 기후 현상이 생산과 공급망에 미치는 영향은 이미 심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22년 인도는 극심한 폭염으로 밀 생산량이 급감하였고 인도 정부는 식량 안보를 이유로 밀 수출을 금지해 글로벌 밀 가격이 급등하여 인도의 밀 의존도가 높은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에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입혔다. 2023년 여름에는 그리스와 스페인 등 유럽 지역에서 기록적인 폭염과 건조한 날씨로 인해 대규모 산불이 발생해 대규모의 농경지와 산림이 소실되면서 농산물 생산에 차질이 생겼고, 이는 유럽 전체의 식료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독일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는 당시 “폭염으로 유럽의 식품 물가가 0.43∼0.93%포인트 상승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여기에 더해 “2035년이 되면 기온 상승에 따른 기후플레이션으로 식품 물가가 최대 3.2%포인트 오르고, 전체 물가는 최대 1.2%포인트 상승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기후플레이션’은 농작물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최근 식탁에 오르는 기본 반찬으로 빠질 수 없는 김의 생산량이 급격하게 줄어든 것도 기후변화 탓이다. 최근 우리나라 연근해 지역의 해수면 온도가 역대급으로 따뜻한 상태가 지속되면서 전국 김 생산 비중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전남에서 생산량이 급격하게 감소하면서 김 관련 제품 가격의 상승을 가져왔다.
다가올 2025년에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어떤 이상 기상 및 극한 기상 현상이 발생할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기후플레이션’으로 인한 경제적·사회적 피해가 진행될 것이라는 점이다.
여러 가지 어수선한 국내외 상황 가운데서도 ‘기후플레이션’에 대한 국가와 기업의 대응 방안은 결코 간과될 수 없다. 기업들은 기후 리스크에 대비해야 하고 정부는 에너지 정책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특히 ‘기후플레이션’의 충격을 최대한 감소하기 위해 기후 적응형 작물 개발 등에 대한 투자가 시급하다. ‘기후플레이션’은 단기적 현상이 아니라, 기후 위기 시대의 구조적 문제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