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역점사업으로 추진 중인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가 도입 두 달을 앞두고 야당의 반대로 좌초 위기에 놓였다. 교육부는 전면도입을 1년 유예하는 안을 제시하며 한발 물러섰지만, 야당은 AI 디지털교과서를 ‘교육자료’로 격하한 법을 통과시킨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해당 법이 통과되면 개발사들이 막대한 손해를 떠안는 등 교육계에 큰 혼란이 빚어질 것으로 보인다.
25일 교육부에 따르면 AI 디지털교과서를 ‘교과서’가 아닌 ‘교육자료’로 규정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은 이달 1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야당 주도로 통과됐다. 해당 법안은 26일이나 30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다.
교육부는 당초 내년 3월 초등학교 3·4학년과 중·고 1학년 영어·수학·정보 교과에 종이 교과서의 보조수단으로 쓰일 AI 디지털교과서를 도입한다는 계획이었다. 디지털기기로 다양한 학습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는 AI 디지털교과서는 각자 수준에 맞는 문제를 푸는 등 맞춤형 학습이 가능하다.
그러나 야당을 중심으로 ‘정부가 효과도 검증하지 않고 정책을 성급하게 밀어붙인다’는 지적이 제기됐고, 더불어민주당 고민정·문정복 의원은 AI 디지털교과서를 ‘교과서’가 아닌 ‘교육자료’로 규정한 법안을 발의했다.
교과서는 모든 학교에서 채택해야 하고 무상교육 대상이지만, 교육자료는 학교장 재량으로 선택하고 무상교육 대상이 아니다. 교육자료가 되면 사용률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예산 등 여건에 따라 일부 학교에서만 사용될 경우 오히려 교육격차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교육자료는 저작권 절차가 까다로워 개발사가 내야 하는 저작권료 등이 크게 상승해 최종 가격도 올라갈 수 있다. 정부는 단계적으로 도입 학년과 과목을 확대한다는 계획이지만, 교육자료로 격하되면 개발사들이 추가 개발을 포기할 가능성도 있다. 검정 과정까지 거쳐 개발된 AI 디지털교과서가 조용히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교육부는 교사 연수, 인프라 확충 등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을 위해 올해 1조2797억원을 투입했는데, 모두 매몰비용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교육부는 어떻게든 교과서 지위를 잃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최근 민주당에 AI 디지털교과서 전면 도입을 1년 유예하는 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교과서 지위를 유지하는 대신 2025년에는 원하는 학교만 도입한다는 것으로,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야당 비판을 수용한 것이다. 이 부총리는 교육청과 협력해 1년간 도입 효과성을 면밀히 분석하겠다고도 약속했다. 교육부 입장에선 크게 한발 물러난 셈이지만 야당은 여전히 비협조적인 분위기다.
약 2년간 수십억원, 많게는 수백억원을 들여 AI 디지털교과서를 개발한 업체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한 개발사 관계자는 “당장 두 달 정도 뒤면 현장 도입인데 교과서 지위를 잃을 수 있다니 청천벽력”이라며 “법이 통과되면 업체들은 다 죽으란 소리”라고 토로했다. 업체들은 교육자료로 격하될 경우 소송도 불사한다는 입장이다.
교육부는 본회의 통과 전까지 국회를 최대한 설득한다는 방침이다. 전국 교육감들 협의체인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도 전날 “AI 디지털교과서를 교육자료로 규정할 경우 엄격한 검증시스템을 거치지 않아 자료 편차 및 개인정보보호 등 문제가 심화할 우려가 있다”며 국회에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본회의에 상정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